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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은 정말 나약했을까?

익명_72707812
2792 0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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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NO! 조선군도 잘 할 때는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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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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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익명_72707812 작성자
링크 미리보기가 ㅂㅅ같이 나오긴 하는데 잘 들어가지긴 하네
23:09
23.11.02.
2등 익명_72631859
딴건 몰라도 백병전은 약한거 맞음. 특히 일본한텐 거의 상대가안됏음
00:13
23.11.03.
조선군은 원래 여진족,왜구 맞춤전술로 기병이랑 화포,활 원거리 무기가 주특기였고 일본은 전국시대 이후로 백병전 달인이 되었으니 일반 징집병끼리 백병전으로 붙으면 발리는게 당연한거.명나라군도 임란에서 일본군 섬나라 오랑캐라고 얕보고 싸우다 전투에서 호되게 당했는데
03:31
23.11.03.
일본이랑 비교하면 전반적으로 밀리긴 한건 맞는데 또 모든 조선군이 백병전을 못한건 아님. 무기 상성상 이점 때문에 그런거도 있지만 조선군이 월도,협도,편곤으로 일본군 썰어버린 기록들도 있고 황진 한명련 정기룡 명회 등 백병전에 능한 사람들도 있었으니
03:38
23.11.03.
익명_33602912
그건 검 대 창 급으로 리치가 차이나는 무기에 따른 결과이지, 실력 면에서도 압도적으로 딸린 게 맞음.
일본은 특히나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현재의 검도가 에도시대 때부터 쭉 발전해 왔음. 애초에 일본군 중학생 정도의 소년병 하나가 조선군 명군 대여섯을 썰어버렸다는 말까지 기록에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음.
조선에 투항한 왜군 장수들이 조선군 검법을 지도했는데 애들 장난 보는 줄 알았다는 언급도 있음.
그리고 맨손 대 맨손에서도 할말하않. 일본군이 압도적이었음. 특히 유술의 발달은 2차대전까지도 이름을 떨쳤는데, 이는 유도가 서양에 보급되는 계기가 됨
조선은 화력이 발달했고 일본은 백병전에 능했던 게 사실임
02:33
23.11.04.
익명_33602912
난중일기에 나온 언급을 보면
"우리 수군 다섯이 왜나라 소년병 하나를 당해내지 못한다"라는 기록이 있고,
당시 조선 군사나 명나라 군사나 백병전시 왜군과의 교환비가 10대1이 넘었다고 함.
02:35
23.11.04.
익명_75750997
삭제된 댓글입니다.
14:28
23.11.04.
익명_61982633
그 유술을 말한건 2차대전 때 일임. 19세기 말에 정립돼 유도는 서양국가에 이름을 떨쳤음
개개인의 실력이 아예 영향을 안 끼친다고 말하긴 힘듦. 물론 전술이 더 중요하긴 하겠지만
내려치기가 아니라 당시 일본에는 에도막부 이래로 우리나라 태권도같이 검도 열풍이 불고 있었고 자연스레 모두가 상향평준화 된 것. 그냥 잇는 사실을 말한거임
14:39
23.11.04.
익명_75750997

그건 조선군을 너무 내려치기하고 일본군을 너무 올려치기 하는 거임.
일본군도 백병전에선 창이 주류였지, 칼이 주류였던 적은 없음.

사실 우리나라 사극 에서나 마치 왜군 하면 조총이나 일본도가 주로 나오지 정작 당사자인 일본의 사극들을 보면 다름. 일본 사극에서의 전투씬을 보면 싸우는 병사들의 다수는 조총이나 일본도가 아닌 창으로 무장하고 싸움.

게다가 당시 조선군의 칼이나 창은 모두 일본의 창이나 칼보다 리치가 짧았음.

조선군의 환도 길이가 일본의 소태도와 별 차이가 나지 않음.
단순 실력 차라기 보다는 무기의 차이에서 밀린 부분이 큼.


애초에 칼이란 무기는 창보다도 제작비가 비싸서 아무나 차고 다니지 못 함.
이걸 이미 차고 백병전을 벌였다면 신분이나 계급이 높았다는 말임.
예시로 든 소년병 사레도 일반 병사의 사례라 보긴 힘듬.(아마 일본군 장수의 시중을 들던 무사집안의 시동이나 자제여서 전문적으로 검술을 습득했을 가능성이 높음)

 

개개인의 실력이 아예 영향을 안 끼친다는 말은 아님.

다만 병사 개개인의 실력이 전장에 영향을 낄 정도면 이미 전장 지휘가 막장이란 소리라서 지휘관들의 능력부족을 따져야 함. 

14:44
23.11.04.
익명_61982633
항왜들이 훈련도감에 편입돼 조선군에게 검법을 가르치게 됐는데 무슨 애들 장난인가? 했다는 기록이 많음. 또한 후에 조선군이 일본의 검법을 참고해 따로 교본집까지 출판함. 실력 자체가 갭이 어마어마하단 뜻임.
재밌는건 검도를 너무 잘하니까 반란이 무섭다고 조정에서 항왜들을 다 참수해버림ㅋㅋㅋㅋ 예나 지금이나 헬조선식 마인드

검도를 조금이라도 해봤으면 아실테지만, 모여봐야 제식훈련하고 끝이었던 조선군이랑 단급 올려가며 전문적으로 검도를 익힌 왜군이 붙으면 결과는 불보듯 뻔함. 배운자와 안배운자는 하늘과 땅차이임
14:58
23.11.04.
익명_75750997
병사 개개인의 무술실력은 그렇게 중요한 변수가 되지 않음.
백병전에서 일본검술이 인상적인 건 맞고, 그래서 님 말대로 조선군에서 왜검술을 가르치게 된 것도 맞음.
근데, 그 무술실력이라는게 하루 이틀에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 비용도 만만찮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더 좋은 무기를 개량하는데 힘 쓰는게 더 효율적임.
(대표적인 예로 편곤이나 월도가 있음)

그리고 단급제의 기원은 근대 유도의 강도관임.
15:15
23.11.04.
저 당시에 여러 고류검술들이 많이 있던거지 검도가 어딨냐 ㅋㅋㅋㅋ
https://www.google.com/am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1802220941001/amp

그리고 선조가 항왜들 숙청 지시내렸다는 사료가 있음?? 몇몇 인터넷 댓글서 선조가 항왜들 숙청했다고 하는데 난 그런 자료 못본거 같은데
거기다 항왜들은 정묘호란 이괄의 난 병자호란 때도 싸웠음
05:56
23.11.06.
익명_61982633
난중일기 몇단락 몇페이지인것까지는 잘 기억이..ㅋㅋㅋ 인터넷발이긴 한데 몇가지 더 찾아와봤음.



오랑캐(후금) 군사는 돌격전을 벌여 마구 덤비는 데만 능할 뿐이고 예리한 검을 활용하는 데는 도저히 왜놈만 못하다.

-조경남 『난중잡록 정묘년』


우리 수군 다섯이 왜나라 소년 검사 한명을 당해내지 못한다.

-이순신 『난중일기』


왜적은 실로 상대하기가 어려우니 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왜적은 철환(조총)을 비 오듯 퍼붓는데 한번 오기만 하면 곧바로 쓰러지고 근접해서는 칼을 사용하는데, 그 검술이 지극히 기이하니 이들은 참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라고 하겠다.

-조익 『포저집』



훈련대장 유혁연이 말하기를,

"검술은 천하 어디에도 있지만 일본 것이 최고입니다.
우리 나라는 홀로 전하고 익히는 자가 없어 신의 마음이 항상 분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신의 아랫사람(김체건) 중에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을 보내 검을 배우게 하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말하기를, "보내라" 하였다.

-『승정원일기』 숙종 5년(1679) 7월 27일



칼을 쓰는 묘리는 왜인들이 최고이다.

왜의 달인인 아이스 히사타다(愛洲移香)의 검술을 카게류(陰流)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군교(軍校)인 김체건이 일찍이 사신을 따라 일본에 들어갔다가

그 방법을 배워 와서 지금까지 유전하니, 이른바 왜검이라는 검술이다.

-『병학지남연의』 (왜검은 조선의 군용 무술 교본인 무예도보통지에 실렸다)



병조가 아뢰기를 "칼을 잘 쓰는 것이 단병전에서의 가장 중요합니다.

일본과 절강성은 이것으로써 천하의 강병을 만들었습니다."

-『인조실록』 1630년 1월 6일




이번에 귀순한 왜인(항왜) 중에는 검을 잘 쓰는 자도 있고 창을 잘 쓰는 자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검술이 전해 오지 않았는데, 이는 만세에 유익한 일이다.

-『선조실록』 1594년 7월




항왜(투항한 왜군)들이 칼을 잘 써서 우리 나라 살수를 보고 아이들 놀이와 같다고 하였고,

이들은 칼과 총을 주조하는 법을 안다 하는데

이들 왜인을 어찌하여 머물러 두고 이들의 기술을 배우고 익히지 아니 하는가?

-『선조실록』 1594년 8월 2일



비망기로 일렀다.

"우리 나라 습속은 남의 나라의 기예를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고 더러는 도리어 비굴하게 여긴다.

왜인의 검술은 대적할 자가 없다. 훈련도감에 이르러 배우도록 하라."

-『선조실록』 1594년 12월 27일



정원에 전교하였다.

"전세가 위급한 창졸들간에 단병으로 접전하는 데 있어서는 검술만한 것이 없다.

앞으로는 모든 군사들로 하여금 검술을 익히게 하고,

시재할 때에도 검사를 충분히 뽑도록 해야한다."

-『선조실록』 1596년 12월 5일




이미 칼을 빼들고 접전해 와서 갑자기 헤어날 수가 없었다.

이때 명의 이여송이 인솔하던 군사는 모두 북방의 기마병으로

화기가 없고, 짧고 무딘 칼을 가지고 있었다.

적의 보병들은 모두 3, 4척이나 되는 긴 칼(노다치로 추정)을 가졌는데 날카롭기가 비길 데 없었다.

그들과 충돌하여 싸울 적에 좌우로 후려치니

사람과 말이 모두 쓰러져 그들의 예봉을 감당할 자가 없었다.

-유성룡 『징비록』 벽제관 전투 (명나라 기병대가 칼든 왜군 보병들의 기습에 대패함)





그들(왜군)의 무기는 칼과 총을 제일로 친다.

칼을 찬 자는 반드시 길고 짧은 두 개의 칼을 차서 긴 것은 치거나 찌를 때 사용하고,

짧은 것은 던져서 남이 뜻하지 않은 사이에 맞히면 당장 죽지 않는 자가 없다.

-신유한 『해유록』




백광언 등은 적(왜군)이 눈앞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육박해 들어가 도전했는데,

묘시부터 사시에 이르기까지 적병이 잠복하고

나오지 않자 오시에 이르러 아군이 해이해졌다.

이때 왜적이 풀 속에 엎드려 무릎으로 전진해 와 검을 휘두르며

일제히 일어나 아군 가운데로 쳐들어오니,

왼쪽에서 목 베고 오른쪽에서 찍어대고 하여

아군의 전사자가 부지기수였다.

이지시, 백광언, 고부 군수 이광인, 함열 현감 정연 등이

모두 이 전투에서 피살되어 대군의 기세가 꺾였다.

-조경남 『난중잡록 임진년 상』



왜군이 칼을 휘두르는 사이에 칼등으로 칼날을 받아쳐서 결국 다치지는 않으니,

그 교묘하게 피하는 기술과 능숙하게 부딪치는 기술은 완연히 백원의검법이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장검(長劍)과 철환(鐵丸) 입니다.

근접 무기가 신묘하여 사람마다 검객이 아닌 자가 없고,

기계의 정밀함도 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철환은 비가 내리듯이 쏟아지고 칼은 숲이 서 있는 것과 같으나,

총을 쓰는 것은 칼을 쓰는 것에 비해 자못 뒤떨어집니다.

-정탁 『약포집』 1593년 8월 15일. 명나라 유생 호환에게 보낸 편지



홍병구가 병조의 말로 아뢰기를

"유성룡은 제찰사가 되어 오랫동안 절강병법(북방 유목민족의 기마병 보다, 남부 왜구를 상대하는데 적합한 척계광의 병법)의 진중으로 있으면서 육박전을 벌일 때

검술보다 중요한 것이 없음을 익히 보았기 때문에

검술을 긴요하게 사용하는 계첵을 선조께 고하였습니다.

그러자 선조께서 매우 옳게 여기시어 금위 하는 장사들에게 모두 검술을 익히게 하였습니다"

-『승정원일기』 1629년 4월 14일




병조가 아뢰기를

"어느 전투이건 간에 승부는 모두 단병(短兵)으로 육박전을 벌이는 데에서 결판이 납니다.

왜병과 호병을 보면 모두 검술을 알고 있습니다.

육박전을 벌일 즈음에 네 가지 기예(창, 활, 총, 기마술)가

모두 쓸모 없어지게 되면 반드시 차고 있는 칼을 가지고 사생을 결단하려 덤빕니다.

-『인조실록』 1628년 9월 29일



왜군들은 전투시에 멀리 있으면 총을 쏘아 맞히고.

가까이 있으면 칼을 뽑아 돌진하니 이 때문에 천하에 그 칼끝을 당할 자가 없었다.

그래서 명나라의 척계광 장군이 왜를 방어함에 있어

총으로 총을 대적하고 검으로 검을 대적하도록 하였으나,

여전히 왜적의 검술을 대적 하기에는 부족하여

반드시 낭선과 창으로 방패와 칼을 옹호 하도록 하였다.

-최기남 『무예제보번역속집』 (척계광은 칼든 왜구 1명을 상대 하기 위해, 명나라 병사들이 다굴치는 집단 전술을 고안해 냈다)




명나라 군에서 백고초기(白高招旗)를 세우면

각 도수(刀手)는 모여서 대기하는데,

모두 갑옷을 입는다. 북 소리가 들리면 몸을 날려

왜도(倭刀)의 용법대로 머리를 낮추어 말의 다리를 베고,

몸을 일으켜 말의 머리를 베는 두 가지 도법(刀法)을 익혔다.

-『무비지』




왜이(倭夷)는 보통 호접진(蝴蝶陣)을 치는데,

전투시에는 부채를 휘두르는 것으로 호령을 삼는다.

한 사람이 부채를 휘두르면 무리들 모두가 칼을 춤추며

일어나 공중으로 칼날을 번뜩이며 재빨리 휘두른다.

우리 병사들이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다가는 한 칼에 베여 버린다.

칼은 위를 공격하는 척하면서 아래를 공격하기 때문에 막기가 어렵다.

표창과 단도는 자루를 드러내지 않고 갑작스럽게 던지는 까닭에 예측할 수 없다.

-『주해도편』 왜국사략



왜나라가 만드는 칼인데 단련이 정교하며 만듦새가 가볍고

예리하니 다른 지방의 칼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

검신의 빛나는 광채가 눈을 쏘아 보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며,

검술은 좌우로 도약 하는데다 기이한 방법으로 공격 의도를 숨기니 눈으로 헤아릴 수 없다.

-『단도법선』 단도설(单刀说)
15:10
23.11.04.
익명_08488679

다른 게시글하고 댓글들 보고 이거 다시 보니까, 일본군 검술을 띄워주는 걸로, 조선병사들의 능력부족을 탓하고, 조선군 지휘관들의 전술부족과 지휘통솔력 부재는 묻어가는 걸로도 보인다. ㅋㅋ

예나 지금이나 군 간부들 병사들 능력부족 탓하면서 지들 무능력은 외면하는 꼬라지는 똑같구나... T-T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가 오버랩 되고, 군복무 할 때 지가 관리 못 해서 빵꾸 난 거 병사 탓하면서 타 부대원들하고 비교질만 해대던 노총각 행보관 놈도 생각나네. 아오 빡쳐.

20:04
23.11.06.
그리고 난 조선군이랑 조선군 지휘관이 잘하기만 했다고 한 적 없다.일본군 백병전 킹왕짱 이 ㅈㄹ하면소 일본군이랑 일본도 빨아준적도 없고
20:22
23.11.06.
익명_58714933
아아~ 오해임.
님이 그런 식으로 말했다는게 아니라, 님이 가져온 역사 기록물 속 조선군 관련 인물들의 발언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도 보인다는 말임. 님 상대로 한 말이 아니니 오해 풀 길.
20:46
23.11.06.
뭐 당장 선조도 조선군이 약해서 그렇고 우리 지휘관이 무능했고 명군이 잘싸워줘서 이겼다고 합리화하고 책임회피 존나 했잖음
22:34
23.11.06.
꼭 그런거도 아니고 적이 워낙 강해서 그럴수도 있고 아군 병사 기량이 뛰어나서 그럴수도 있지
20:30
23.11.06.
맨손vs맨손에서는 오히려 훨씬 조선이 유리했지 피지컬 적으로도 조선쪽이 훨씬 크고 기록에서도 맨손으로 붙었을때 왜군이 개두드러 맞았다고 써져있는데 조선은 석전이 일상스포츠였던 나라임
05:44
23.11.06.
익명_88220977

동네 패싸움도 아니고 군사 간 백병전에서 병사 개인의 무술실력은 그렇게 중요한 변수가 되지 않고 실전경험도 백병전에서 그렇게 결정적 변수가 되지는 않음. 난전에서 일본군이 조선군보다 잘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백병전이라고 모두 난전이라 할 순 없음.

 

오로지 그 실전 경험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전훈분석), 교육훈련 가능하도록 만들어서 교육/훈련하고 (교리화) 실전에서 사용해서 다시 피드백을 얻어야 도움이 되었음.

17:26
23.11.03.
익명_88220977

전쟁에선 실전경험보단, 평소 훈련의 질과 양이 좋은 쪽.

병사 개인의 무술실력보단 군대의 진법 수준이 높은 쪽이 더 유리함.

그래서 그걸 조율하고 지휘하는 부대 지휘관들의 통솔능력이 중요하지.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이 일본군에게 밀린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군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하급 장교와 부사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임. 본래 조선 초기까지는 갑사가 실질적으로 부사관 역할을 했는데 세조가 의흥 삼군부를 오위 도총부로 개편하면서 갑사를 오위 중 하나인 의흥위로 몰아넣어 사실상 없애버림. 게다가 그 이후로도 조선군에는 이와 비슷한 병종이나 계급이 창설되지 않았음. 물론 이는 군대 규모가 소수일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음. 고급 지휘관들이 조금만 더 신경쓰면 군의 하부까지 통괄할 수 있었기 때문. 그러나 전시 상황에서 수만~10만, 수십만 단위 이상의 대군이 소집되었을 때는 상황이 달라짐. 하급 장교와 부사관이 부족하여 고급 지휘관들만으로는 군대를 완벽히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여러가지 문제가 속출함.

 

양란기에 조선군이 겪은 위기 대부분도 하급 간부의 부재로 인한 거. 군대 하부까지 세세하게 통괄하는 간부가 없다보니 당장 대군에 대한 일사분란한 통제가 불가능. 이러니 조금만 전세가 기울어도 군대가 와해되었고, 조선 정규군이 임진왜란 시기의 왜군과 병자호란 시기의 청나라 팔기군과의 대규모 회전에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지. 게다가 이 둘은 각각 전국시대, 명청 전쟁을 경험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데다, 평소 군사훈련도 충실한 정예병들인데, 하필이면 이런 높은 수준의 군사역량을 쌓은 직후 조선을 침공했으니...

---

1990년 걸프전에서 미군 기갑부대는 쿠웨이트에서 압도적인 교전비로 이라크군 기갑사단을 씹어먹고 다님. 이는 에이브람스 전차의 우월한 성능, 다국적군의 항공우세 때문도 있었으나 중요한 것은 미군이 훈련을 통해서 병사들의 숙력도를 만렙 찍어놨기 때문임.

당시 중동으로 파병된 미육군 기갑사단 구성원들은 상당수가 교사, 부동산중개인, 월스트리트 직원 등등 민간인으로서 현업에 종사하다가 소집된 주방위군 예비역 소속들이었고 실전을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었음.

이에 비해 이라크육군은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을 통해 10년 가까이 실전경험을 쌓은 공화국 수비대와 기갑사단 병력이 쌓여 있었음. 이라크군 지휘부는 자신들의 전차가 미군에 비해 성능은 뒤떨어지지만 우리 쪽이 베테랑이 많으니까 붙어볼만 하다고 여겼음. 실제로 이라크군은 1943년 쿠르스크 전투에서 독일군 기갑부대를 막아낸 소련식 대전차 방어선을 그대로 적용해서 '와봐랏!'을 시전했음. 먼저 T-62 같은 구형전차를 운용하는 2선급 부대를 최전방에 깔아놔서 고기방패로 쓴 뒤, 그 뒤에 T-72를 운용하는 공화국 수비대 같은 정예부대를 배치해서 1차 방어선에서 돈좌된 미군전차를 각개격파한다는 전술이었음.

하지만 미국은 교두보인 사우디를 방어하는 사막의 방패 작전(Operation Desert Shield)을 펼치는 동안 내륙에서 기갑부대들을 맹훈련 시킴. 그래서 미군 전차 승무원들은 진저리가 날 정도로 반복숙달에 익숙해짐. 반면 이라크군은 부족한 보급과 인원 때문에 훈련은 커녕 전체 편제의 80%를 유지하기도 벅찼음.

훈련 덕분에 미군 M1A1는 이라크군 T-72가 1발 쏠 때 3발을 쐈다고 함. 현재도 에이브람스 전차 장전수는 평균 5초당 1발, 숙력된 인원은 3초당 1발 장전이 가능함.

상대적으로 에이브람스 전차를 많이 보급받지 못한 미해병대 역시 엄청난 훈련량을 통해 승무원들의 기량을 끌어올렸고 실전에서 구형 M60A1들도 이라크군 전차를 양학하고 다님.

이 와중에 살아남은 극소수의 베테랑 이라크군들이 저항을 하기도 함. 대표적으로 어떤 이라크군 T-72는 미군 M1A1를 400m까지 끌어들인 다음에 명중탄을 먹이는데 성공했음. 하지만 전원 예비군으로 이뤄져있던 M1A1 승무원들은 당황하지 않고 훈련 받은대로 침착하게 행동하여 바로 반격탄을 날려서 T-72를 격파해버림.

이라크군들은 비록 전장에서 오래 구른 짬밥은 있었으나 자신들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간부들에 대한 불신, 그리고 낮은 사기 탓에 전투의지가 0%에 수렴한 상태였음. 이 때문에 공세가 시작되자 상당수가 무더기로 탈주하거나 항복했고, 미군은 적의 방어병력보다 포로들에게 막혀 진격이 늦춰지는 해프닝을 겪음.

요약 - 실전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도 사기가 낮으면 참피에 지나지 않다.

출처 - '걸프전 대전차전' (카와츠 유키히데, 길찾기 출판)

17:32
23.11.03.
익명_88220977

조선군은 수성전-농성전-고지전-사격전에 너무 특화된 느낌...

백병전이 약하다고 무조건 그 나라의 군대가 약하다고 할 순 없음.

스트라이커 계열의 무술이 그라운드 대처능력이 없다고 무조건 그 무술이 약하다고 할 순 없듯이.

000.jpg

하지만 최소한 대처능력은 갖추긴 해야 했는데...

임진왜란 초반이 너무 아쉽지...

17:27
23.11.03.
조선군도 처음부터 백병전이 약하진 않았음. 근접전 병종이 훈련도 빡세고 기피하는 사람들도 많아져서 점점 축소되고 기량도 떨어지고 백병전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생긴거지.조선 초기 팽배수랑 도수들 기록보면 셌음
18:38
23.11.03.
https://youtu.be/aOeSSnu96zs?si=TNpwPYf5FG_FNMb6

https://bemil.chosun.com/nbrd/gallery/view.html?b_bbs_id=10044&num=196874
18:50
23.11.03.
4군6진 정벌 이후에는 예방전쟁이나 방어전만 했고
애초에 조선군 편제가 대규모 전면전이 아니라 소규모 침략이나 반란진압을 상정하고 만들어졌으니까
그리고 조선도 임란 때 대비를 아예 안한건 아니었음. 3만~에서 5만정도 까지 침략할거라고 예상하고 대비한건데 120년간 전쟁만한 28만여명이 해상원정으로 침략한거니
18:52
23.11.03.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kkumi17cs1013&logNo=222574624977&referrerCode=0&searchKeyword=%EC%A1%B0%EC%84%A0%20%EA%B8%B0%EB%B3%91
06:22
23.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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