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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을 민족 얼의 상징으로 취급하는게 오히려 일제 잔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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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에서 무술이란 건 군사기술이거나 기껏해봐야 호신술의 일종이였지 무슨 민족문화의 상징 같은게 아니였음.

 

삼성 갤럭시나 K-2흑표가 민족문화의 상징으로 취급되진 않잖아?

 

오히려 이런 무술 민족주의는 국뽕과 민족주의뽕이 치사량에 달했던 일본제국에서 유래한거임.

나중에 일본제국에게 식민지배 받던 나라들도 이걸 적대적으로 답습했던 거고.

 

당대의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은 일본의 유도나 공수도를 배우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음.

한창 싸우는 중에 조선제 총, 일본제 총, 미국제 총 따지면서 쓰겠음? 당장 손에 닿는대로 써먹어보는거지.

 

서재필은 택견의 명수 이규완에게서는 택견을 배웠지만, 일본의 유도도 배웠다고 함.

 

그 유명한 김좌진 장군도 유도에 능숙했다고 하고, 신흥무관학교에서 교관도 했던 이범석 장군도 유도를 배웠고, 나중에 용인대학교의 전신인 대한유도학교를 세움. 이범석 본인이 신흥무관학교에서 가르쳤던 체육 과목들(유도, 태권도 등)이 초기 대한유도학교의 학과 편제와 교과과정을 편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고, 따라서 대한유도학교가 1993년 개칭한 용인대학교 역시 역사성과 커리큘럼 계승의 측면에서 상당한 접점이 있음. 역사성에서는 오히려 신흥무관학교의 후신임을 강력히 주장하는 육군사관학교보다도 정통성 있음.

 

그리고 태껸꾼들 중에서도 유도나 공수도, 복싱, 레슬링 등 배운 경우도 많았다고 함.

솔직히 이 당시의 무술가들은 주 전공 무술 외에 다른 무술들도 같이 수련하는 경우가 흔한 편이였음.

원래 전통무술이란게 한 가지 기예에 특화되는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경우보단 여러 분야에서 고루 잘 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인 경우가 많음.

 

이 당시엔 송덕기 옹처럼 한 가지 투기만 익힌 경우가 드물다고 봐야 함.

 

당장 극진가라데의 최영의 총재도 유도 유단자였고, 유도의 아버지인 가노 지고로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흡수한다는 철학으로, 각종 유파의 유술들을 편견 없이 받아들였음. 당시만 해도 비인간적인 살상무술이라고 천대받던 가라테의 전수자를 직접 도장으로 초청하여 세미나를 열기도 함.

 

가노 지고로의 이런 철학은 당대 일본에선 특이하다고 할 순 있어도 오히려 조선의 무술상식과 많이 비슷했을 거임. 조선 문화의 특성상 무술이란게 민족적으로 그렇게 특별한 무언가가 아닌, 하나의 기예, 기술이였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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