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겨울』 - 3장 : 잊혀진 싸움터
세상은 여전히 죽어 있었다。
잔해와 먼지, 찢긴 깃발, 부서진 탑들。
모든 것이 바람에 깎이고,
시간에 씹혀 사라진 풍경들。
세라와 도윤은 검게 얼어붙은 대지를 따라 걸었다。
도윤은 가끔씩 앞장서며 손짓했다。
어디선가 들은 기억 속 지도를 더듬으며,
투기장의 위치를 짚어보려 했다。
"……여기서 남쪽으로 이틀 정도 걸어야 해."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예전에는 ‘부흥지구’라고 불렸던 곳이야.
지금은, 아무도 가지 않아."
세라는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은 껄끄럽게 웃었다。
"……그곳에도 여전히 위험한 것들이 있어.
남아있는 무력 집단, 약탈자들……그리고, 투기장 자체."
"투기장 자체?"
세라는 조용히 되물었다。
도윤은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며 대답했다。
"누구도 확실히 말할 수 없어.
하지만……거기엔, 아직도 싸움만을 기억하는 것들이 있다고 해."
"사람인가?"
"글쎄……사람 같으면서도, 사람 같지 않은 것들."
세라는 짧게 눈을 감았다。
데이터 조각 속에서 '부흥지구', '투기장', '무력잔당' 같은 키워드가 흐릿하게 연결되어 떠올랐다。
폭력의 기억이 축적된 장소。
전쟁과 배신, 피의 의식이 반복된 자리。
기록은 대부분 불완전했다。
그러나 그 파편 속에서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거기엔……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 남아 있다."
세라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가볍고, 칼처럼 예리했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말을 줄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해가 기울고, 검붉은 노을이 하늘을 뒤덮었다。
땅 위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깨진 고속도로를 따라, 거대한 철제 구조물이 드러났다。
구부러진 철골, 무너진 콘크리트.
그리고, 벌집처럼 뚫린 지하 통로의 입구들。
그것은 옛 투기장의 잔해였다。
멀리서 바라본 그것은 마치 괴물의 뼈처럼,
이 세계의 증오와 절망을 삐죽삐죽 드러내고 있었다。
도윤은 숨을 죽였다。
손등으로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여기야."
세라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투기장을 향해 다가갔다。
갈색 눈동자에, 무너진 영광의 터전이 고요히 비쳤다。
'여기서, 유진의 흔적을 찾는다.'
그녀는 조용히 다짐했다。
바람이 싸늘하게 울었다。
투기장의 그림자 안쪽,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깨지지 않은 싸움의 기억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