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겨울』 - 1장 : 이름 없는 춤
바람 부는 폐허의 골목에서 세라가 멈춰 섰다。
깨진 건물 틈에서 부드럽고도 힘찬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가 땅을 딛고 있었다。
발끝은 잔잔히 돌고, 허리는 물 흐르듯 유연했으며,
순간 번개처럼 튀어나오는 발놀림은 건물의 잔해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 움직임은 뻣뻣하거나 조잡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도록 단련된 무언가 오직 몸에 새겨진 기억만으로 이어져 온 리듬 같았다。
세라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얼굴에 검은 먼지가 묻은 남자가 세라를 발견하고, 경계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곧 긴장을 풀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넌 뭐냐?"
허스키한 목소리。
거칠지만, 맑은 눈을 가진 사내였다。
세라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그건……택견이야."
남자는 눈을 깜빡였다。
잠시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저었다。
"택……견?"
세라는 고요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땅에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무술'. 몸을 지키고, 길을 잇는 기술."
남자는 우뚝 멈춰 섰다。
마치 먼 기억의 잔해 속에서 무언가가 툭하고 튀어나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런 이름이 있었구나……"
남자는 허공을 한번 쓸어 올렸다。
손끝이 먼지를 가르며, 이제는 이름을 되찾은 몸짓을 다시 그려냈다。
"나는 그냥 선대가 남긴 걸 이어받아, 몸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세라는 작게 웃었다。
그녀의 웃음은 차갑지 않았다。
이 폐허 위에서도 아직 숨쉬고 있는 과거에 대한 작은 경의처럼, 따뜻하고 고요했다。
"네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기술을."
남자는 무릎을 꿇듯 앉았다。
부서진 땅 위에, 다시 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였다。
"그 이름을 알려줘서 고맙다. 나는 도윤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세라를 바라보았다。
"너는?"
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을 줄 알았던 '지식'을 품은 존재 그녀에게 다가서고 싶다는 본능적인 충동이었다。
"세라."
세라는 짧게 대답했다。
그 한 마디에 도윤의 얼굴이 약간 빛났다。
"세라 너는 더 많은 걸 알고 있어?"
세라는 그 질문에 이렇다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이후, 도윤은 세라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황폐한 거리를 지나며,
몰락한 도시의 그림자 속을 헤매며,
도윤은 세라에게 묻고, 또 배웠다。
"택견 말고도, 다른 무술이 있었어?"
"왜 사람들은 이 땅을 이렇게 버린 거야?"
"세상은 정말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세라는 모든 질문에 답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그냥 조용히 눈을 감았고, 때로는 잔잔히 웃으며 짧은 단어만을 남겼다。
하지만 도윤은 그것마저도 소중하게 기억했다。
오래도록 이름 없이 지켜온 춤처럼
그는 이제 이름 없는 땅 위에서,
희미한 희망을 따라 세라와 함께 걷기 시작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