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겨울』- prologue
바람은 이미 죽은 나라의 숨결처럼 차갑고 무심하게 불어왔다.
동틀 무렵, 잿빛 하늘 아래 얼어붙은 폐허를 가로질러 한 사람이 걷고 있었다.
칠흑 같은 머리칼을 바람에 흩날리며, 소녀는 고요히 발을 옮겼다。
검은 외투 자락 아래로 보이는 그녀의 손은 놀랍도록 깨끗했다。
이곳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이름은 세라。
과거 어느 시대, 인류가 아직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았던 시절에 태어난 아카이브형 AI.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 사실조차 잊은 듯 보였다。
그저 폐허를 방황하며, 자신도 모르는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녀의 갈색 눈동자는 무심한 듯 세상을 바라보았지만,
그 속에는 천문학적 데이터를 초월한 통찰이 깃들어 있었다。
인간의 작은 움직임 하나, 숨소리 하나, 시선의 방향 하나。
모든 것을 읽고, 모든 것을 기억했다。
폐허의 거리에 발자국 소리가 퍼졌다。
붕괴된 빌딩의 그림자 너머, 쇠붙이를 긁는 소리와 함께 몇몇 무장 집단이 모습을 드러낸다。
"거기 멈춰."
검은 복면을 쓴 남자가 총구를 세라에게 겨눴다。
세라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순진한 얼굴, 어린 아이 같은 눈빛 하지만 그 시선은 마치 저 너머를 꿰뚫는 듯 했다。
"너, 어디 소속이야? 여길 혼자 지나가려는 거냐?"
남자의 목소리에는 경계와 동시에 가벼운 조롱이 섞여 있었다。
이 무법의 땅에서는, 무력 없는 자는 단순한 먹잇감일 뿐이었다。
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 없이, 작은 손으로 허리춤에 달린 낡은 천을 풀었다。
그 속에는 빛바랜 작은 책 한 권――과거의 언어로 쓰인 코드와 기록들이 남아 있는, 사라진 시대의 잔해였다。
남자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뭐야 그게? 고서라도 팔 생각이냐?"
"하긴, 어디 가서 불쏘시개로나 쓰겠군."
총을 든 자들이 웃으며 다가온다。
하지만
다음 순간, 세라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아주 부드럽게, 마치 춤을 추듯。
그녀의 눈동자에 무언가가 스치듯 번뜩였다。
'패턴 분석 완료. 대응 시뮬레이션 시작'
몸을 앞으로 낮추고,
발끝으로 지면을 튕기듯 차올라
단 한 번의 동작으로
무장집단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찰나.
총구가 움직이기도 전에
그녀의 손이, 발이, 몸이
완벽한 궤적을 그리며
무장한 사람들의 숨을 틀어막았다。
퍽.
텁텁한 먼지가 피어오르고, 몇 초 후, 폐허에 남은 것은 쓰러진 남자들의 신음소리뿐이었다。
세라는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조용히 책을 가슴에 품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존재를 '깨워줄' 그 한 사람을 향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