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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올라온 솔각 글에서

익명_675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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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태껸, Taekkyeon)의 활갯짓과 유사한? 형태가 나오는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최소한 중기 조선 기준으로 한반도-남만주 일대에서 소위 각저(角抵)라는 명칭의 시합에서 타격기가 허락된 씨름 규칙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름.

 

저장소에서 종종 올라온 적 있는 효종을 호위한 8인의 무사, 훗날 별군직 팔장사의 기원이 된 인물 중 김여준(金汝峻)이 홍타이지의 권유로 청나라 장수 우거와 각저를 벌여, 우거에게 냅다 주먹을 날리고 허리를 감싸 안아 섬돌에 찧어 죽인 일화는 최소한 2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줌.

 

1. 발차기의 허용 여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저 각저라는 경기에선 최소한 손을 이용한 타격이 허용되었다.
2. 청나라와 조선 사이에 각저라는 공통 경기 규칙이 통용되었다.

 

당연히 세세한 룰까지는 달랐을 지 모르지만 저 일화가 보여주듯 기본적으로 '타격이 허용되는 씨름' 이란 개념이 만주와 한반도 양 쪽에 통용되었다는 얘기니, 무술의 형태도 거기에 맞게 발달했거나, 최소한 맨손격투기의 경우엔 한반도와 남만주 사이에 딱히 큰 차이가 없었을 가능성도 제로는 아닐 것 같음.

 

물론 내몽고와 거리적으로도 가깝고, 역사적으로도 연관성이 짙은 지역이었다보니 실제로 솔각 같은 경우엔 부흐(몽고씨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모양이지만.

 

몽고씨름에선 거의 못 본, 활갯짓과 유사한 형태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건 어쩌면 한반도의 맨손격투와의 근연성?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듬.

 

반대로 조선 입장에서도 여진족이 사실상 조선 초-조선 중기까지 내내 주적이었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쟁 과정에서 서로 닮아가는, 일종의 상호 수렴진화를 했던 것일지도 모르고 말임.

 

역사적 진실이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꽤나 흥미로운 주제인 건 분명하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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