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PJLH (1) - 여섯 명의 임호

익명_182038
554 7 9

 

0. 들어가며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인왕체육관 사범 김형섭입니다.

 

저는 태껸과 MMA의 연관성을 논하면서

태껸의 기표를 정립하는 학술연구에 대해 언급드린 바 있습니다.

 

이 연구는 왜 중요할까요?

 

태껸이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태껸이 무술이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합니다.

 

자부심과 공존하는

마음 한편의 위화감.

 

시장의 차가운 외면 속에

서서히 말라가는 의욕.

 

태껸의 명예는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그 전에, 회복할 명예는 정말 있는 것일까요?

 

대상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그 대상을 정의할 수 없듯이,

 

태껸에 관한 연구가 탄탄하지 않으면

그에 기반한 주장 역시 헛물일 뿐입니다.

 

태껸의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태껸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

 

윗대태껸협회의 연구,

<프로젝트 임호>를 소개합니다.

 

 

1. 여섯 명의 임호

 

(본 글은 가독성을 위해 직함을 생략합니다.)

 

태껸의 초대 무형문화재 송덕기.

태껸을 수련한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모를 수 없다.

 

송덕기가 자신의 기예를 전달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의 유일한 맨손무술 태껸은 절멸했을테니까.

 

그러나 송덕기의 스승 임호에 대해서는 소문만 무성할 뿐, 그 실체는 알려진 바가 없다.

 

- 임호는 장안 팔장사.

- 임호는 태껸의 명인.

 

이마저도 공신력이 부족한 구술,

혹은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일 뿐.

 


 

2023년 가을.

태껸 관장 공현욱과 강태경은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들은 왜 추석연휴를 통째로 들어내어

치솟는 환율을 뚫고 미국으로 향하는가?

물론 태껸 때문이다.

 

태경은 11시간짜리 비행을

현욱과 태껸 이야기를 하며 보내고자 했고,

특히 임호에 대한 내용을 검토하고자 했다.

 

정치외교학 박사과정을 거치며

세계의 민족과 역사에 대해 공부한 태경은

아무리 일제강점기를 거쳤다 한들

태껸의 흔적이 과도하게 삭제된 점에 대해

늘 의문을 품고 있었다.

 

- 송덕기 이전의 태껸은 정말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가?

- 만약 그렇다면, 어떤 민족의 무술이 통째로 소멸할 수 있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일상에 밀려났던 임호 연구를

다시 책상 위로 끄집어올려야 했다.

 

태껸 연구에서 임호가 중요한 까닭은

그가 초대 무형문화재 송덕기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현대 택견의 역사가 송덕기에서 출발하기에

송덕기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디테일한 편이나,

한 명의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무술을 정의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했다.

 

- 송덕기의 기술 중 어디까지가 보편적인 태껸의 기술인가?

- 송덕기의 기술 중 타 무술과 혼재된 요소는 없는가?

- 송덕기의 기술 중 고령(90대)으로 인해 변형된 점은 없는가?

- 송덕기의 기술 범위는 태껸의 몇 퍼센트를 포괄하는가?

 

이런 까다로운 질문에 답을 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송덕기의 동문, 혹은 그 이전 세대의 자료가 필요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임호와 관련된 자료는 대부분 구술에 불과하다:

- 임호는 우리나라에서 싸움을 제일 잘한다더라(김명근)

- 임호는 태껸계의 최고봉이었다(조선일보)

- 임호는 장안의 8장사였다(이준서)

- 임호는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기술도 표범같이 날쌨다(송덕기)

- 임호는 무인이지만 한학자였으며, 사람들이 따르던 사람이었다(고용우)
 

우리는 이 증언을 통해 2가지를 파악할 수 있는데,

- 임호는 싸움을 잘했다는 것과,

- 임호가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태껸을 잘했다는 건 그렇다 쳐.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싸움을 잘한다는 소리가 들리려면

그 사람의 소식이 널리 퍼져야 하는 것 아닌가?’

 

태경은 이에 착안해 옛날 신문들을 모조리 뒤져 임호(林虎)와 관련된 기사를 모아왔다.

혼란스러운 임호의 기록들. 

현욱도 한 번은 다 훑어본 기사건만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해 더 이상 진척이 없던 연구였다.

 

태경이 현욱을 말상대로 뽑은 까닭은 그가 태껸 연구에 관해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석사 시절부터 송덕기의 숨겨진 제자들을 수소문하며, 기존의 태껸 계보를 크게 확장한 것은 그의 공이다. 그렇잖아도 태껸은 마이너한 주제인데, 그 중에서도 임호 관련 내용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현욱 정도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얼마간 자료를 검토한 결과,

기록 속에 등장하는 임호는 총 6명이다.

 

1. 태껸인이자 팔장사인 임호

2. 사회주의 계열 무장독립운동가 임호

3. 용정의 교육자 임호

4. 서울의 교육자 임호

5. 경성(서울)에서 <장충>, <신간회> 활동을 한 임호

6. 대구, 일본 지역에서 문예 활동을 한 임호

 

만약 2~6번 임호 중 1번 임호와 동일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임호 연구의 실마리를 찾은 셈이다.

 

먼저 태경과 현욱은 2번 임호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임호가 무인이기 때문에

 

다른 임호가 계몽운동, 청년운동, 문예활동에 참여한 것에 비해, 2번 임호는 만주와 연해주 지방을 오가며 무장독립투쟁을 전개했다. 아무래도 임호에 관한 증언이 공통적으로 무인을 묘사하므로, 2번 임호가 그들이 상상하는 임호와 가장 행보가 유사했다.

 

2. 이준서의 증언 때문에

 

이준서는 송덕기가 무형문화재로 등록될 때 전수장학생으로 함께 등록된 인물이다. 즉, 송덕기가 행정적으로 제자로 등록할만큼 가까운 사이였다는 의미다.

 

그는 현욱에게:

- 만주에 태껸 동문들이 있을 수도 있다.

- 임호는 만주로 갔을 수도 있다.

등의 이야기를 전해준 바 있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나 명확한 증거는 없었지만,

당장 러프한 가설을 세우는 데는 충분했다.

 

‘임호가 유명한 무인이라면, 만주나 연해주에서 무장독립운동에 참여할 법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가설이 사실일지라도, 2번 임호가 태껸을 수련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공훈록에는 이 사람이 무슨 당 출신이라거나, 무슨 군대에서 싸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지 무슨 운동을 했는지까지는 나오지 않으니까.

 

 

그러다 현욱은 2번 임호가 함경도 길주 출신이라는 점에 눈길이 갔다.

현욱: “어. 우리 외할아버지도 함경도 출신이신데.”

태경: “함경도 어디요?”

현욱: “글쎄. 명천이랬나 어디랬나.”

태경: ”어 그럼 완전 옆인데요? 여기 붙어있어요.”

 

명천과 길주.png

<함경북도 지도>

 

현욱의 외할아버지 최호림(虎林).

 

그가 이북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가족들에게도 명확히 전해지지 않는다.

호림은 6.25 와중 남쪽의 상황을 확인하고자 가족 대표로 길을 나섰다 그만 분단의 벽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그는 가장 먼저 씨름판을 휩쓸고 다녔다. 그렇게 모은 소들을 밑천삼아 운수사업을 시작했고, 길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을 무력으로 감화(?)시켜 직원으로 두었다.

 

현욱은 일곱 살부터 중학생 때까지 외조부에게 씨름을 배웠다. 이상하게도 그 씨름은 샅바도 없고 기술도 달라서, 현욱이 여러 번 이게 씨름이 맞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아무튼 어린 현욱은 그 씨름이 입맛에 딱 맞았고, 태껸에 입문하게 된 계기 역시 그나마 가장 비슷한 무술이 태껸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그게 태껸이었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당신께서 함경도 출생이시니 그저 이북씨름의 한 종류겠거니 하고 말아버렸다. 특히 태껸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로는 객관성을 위해 더욱 생각을 아꼈다. 그것 말고도 태껸에는 복잡한 이슈가 너무 많았다.

 

태경을 포함해 현욱의 주변인들은 이 씨름 이야기를 최소 한 번씩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이런 기술을 배워서 이렇게 써먹었다.’, ‘이런 훈련을 했는데 이럴 때 도움이 되더라.’ 하는 내용이지, ‘외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다~.’ 하는 이야기까지 하기에는 계기가 없었다. 현욱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 외할아버지가 어릴 적 성인식 삼아 대동강을 헤엄쳐 건너고 왔다는 이야기. 

- 어릴 때 소를 몰았고 송아지와 염소들과 씨름하던 이야기. 

- 그래서 자신도 소 뿔을 타고 굴러가는 연습을 한 이야기. 

- 자신에게 씨름을 가르치며 최씨 집안 남자들은 다 할 줄 안다 했던 이야기. 

- 어머니께서 외할아버지가 집에 도둑이 들자 구기듯 잡아놓고 두들겨 팼다는 이야기. 

- 사업은 제법 크게 했지만 한사코 통장은 만들지 않았던 이야기. 

- 대신 집 구석구석에 숨겨진 금고를 쓰셨고, 하나는 계단 밑에 있어 어릴 때 신기했던 이야기. 

- 버릇없이 굴다 구리 전선을 감아맨 채찍으로 맞은 이야기. 

- 종종 러시아 노래를 흥얼거리시던 이야기.

- 같이 TV를 보다 태권도 시범이 나오자 씨름할 줄 모르면 당수는 소용없다고 하신 이야기. 

- 운동하던 친구들이 오자 가족들을 모두 방 밖으로 내보낸 이야기. 

- 그 중 한 분은 너구리로 만든 털모자를 쓰고 계시던 이야기. 

- 그 모자가 탐나 주변에서 기웃거리다 혼쭐이 난 이야기.

 

어느새 현욱 눈앞에 어릴 적 풍경이 선했지만

태경은 이 이야기를 들으며 

완전히 다른 생각이 싹트고 있었다.

 

마르크스주의 연구모임을 운영하고

학생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태경만이 알아챌 수 있는 포인트.

 

사업가가 통장을 만들지 않는 것은

은행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함이고,

 

지인이 방문할 때 가족을 내보내는 것은:

그들과의 인연을 자기 선에서 끊기 위함이다.

 

러시아 노래. 너구리로 만든 우샨카.

가족조차 알 수 없는 과거.

 

호림의 행동은

전형적인 지하운동가의 패턴이다.

 

(계속)

 

신고공유스크랩

댓글 9

댓글 쓰기
아니 이게 공현욱 관장님 가족사랑도 연동이 되네요 ㄷㄷㄷㄷ 다음화...다음화가 시급하다
00:34
6일 전
다 음 화
와 진짜 웬만한 역사소설 이상으로 재밌네요
00:39
6일 전
공현욱 관장님 외조부 성함이 이호림으로 임호랑 순서만 다르고 한자는 같은데 걍 우연의 일치겠지? 본인이라기엔 나이도 안 맞고... 동명이인부터가 6명이나 되니
01:02
6일 전
성함이 최호림으로 아예 "최 씨 집안"에 대한 언급도 따로 있으니 동일인이라기엔 무리가 있을지도. 만약 동일인이라면, 당신의 성함 뒷 두 글자를 순서 바꾸어 예명으로 사용하신 건가...?
어찌 되었건 첫 화부터 너무 흥미롭네.
01:12
6일 전
아니 본문에 다시 보니 공 관장님 외조부님의 성함만 한자 범 호, 수풀 림으로 강조해 두셨네... 이거 설마 김형섭 선생님의 떡밥... 은 너무 간 건가
01:15
6일 전
익명_739198
그 당시 유행하는 이름 아니었을까?
예전부터 시기마다 이름에 자주 쓰이는(유행하는) 글자, 한자, 이름들이 있었으니...
01:25
6일 전
아니 최호림인데 왜 이호림으로 읽었지 ㅋㅋㅋ 공 관장님 나이 그리 안 많고 80년대생쯤으로 보이던데 중학생까지 외조부에게 씨름 수련했다면 나이가 안 맞음. 임호가 송덕기옹보다 열몇살 더 많은데 공관장님 중딩 시절이면 임호는 100살 훌쩍 넘김
01:28
6일 전
임호가 지하운동계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면 그의 이름에서 따온 가명일지도.
01:30
6일 전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