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어쩌면 송덕기 할아버지는 격구 무형문화재 전수자도 겸하셨을 수도 있었다.

익명_523073
293 0 5

https://www.ccd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6656

충주의 신한승도, 서울의 도기현도, 부산의 이용복도 모두 송덕기 옹에게 와서 배우고 자문을 구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결국 현대 태껸의 시조는 송덕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덕기라는 한 사람이 이 거대한 전통문화의 흐름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반면 이와 대조되는 것이 격구입니다. 고려 때부터 사내들 사이에서 인기 많았던 종목이고, 이것이 구한말까지 이어져 송덕기는 대한제국 군인 시절에 격구를 했던 사람입니다.

이 점을 주변 사람에게 늘 자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격구는 끊어졌습니다. 오늘날 말타는 동호인들이 격구를 하며 단체도 여럿 생겼고, 드라마나 영화에 이들이 출연하여 옛날의 격구 영상을 찍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격구는 창작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에 이런 사람들에게 송덕기 옹이 자문해주고 이러저러하라고 알려주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당연히 전통이 ‘계승’된 것입니다. ‘단절’과 ‘계승’은 이처럼 한 끗 차이입니다. 격구는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전통’이라는 말을 붙일 수 없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그것을 결정한 것이 바로 송덕기 옹입니다.

신고공유스크랩

한달이 지난 게시글은 로그인한 사용자만 토론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공유

퍼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