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껸과 MMA (2) - 기표와 기의의 모순

안녕하세요! 인왕 김형섭입니다.
 

지난 글에서 저희는:
1) 윗대태껸을 통해 파악한 태껸의 정의
2) 윗대태껸을 통해 체득한 태껸의 원리
3) 윗대태껸을 바탕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

이 3가지 요소를 통해 왜 태껸을 MMA로 바꾸었는가에 대해 설명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가장 유효한 반박은:
1) 그렇다고 태껸이라는 키워드를 모두 내려서는 안 된다.
2) 설령 윗대태껸의 컨텐츠가 MMA와 가까울지언정 태껸과 MMA는 동일할 수 없다.

이렇게 2가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두 반박 모두 
'태껸은 MMA로 대체할 수 없다.'는 논지에서 출발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책임감을 느끼는 까닭은:
1) 하고 많은 키워드 중 MMA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2) 인왕~청계에서 태껸 키워드를 한 동안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 저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위와 같은 주장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다른 태껸러들의 반응은 보통 다음과 같습니다:

- 너는 태껸에 대한 자부심이 없나 보구나.
- 유튜브를 열심히 보더니 MMA에 빠져버렸구나.
- 태껸을 배워놓고 MMA 타이틀을 달자고 하다니 사기꾼의 기질이 있구나.
 

만약 사실이라면 저는 진즉 윗대태껸을 떠났을 겁니다.
태껸에 대한 자부심도 없고 MMA가 그렇게 좋으면
다른 MMA 체육관을 찾아가 배우면 되죠.

그럼에도 이런 주장을 펼치게 된 이유는
아래 내용을 통해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회상씬
 

윗대태껸은 결련택견의 안티테제처럼 언급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까닭은 현대 택견사를 살펴보면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 충주택견을 고소하면서~ 대한택견이 등장하고,
- 대한택견 멤버들에서~ 결련택견협회가 설립되고,
- 결련택견 멤버들에서~ 윗대태껸이 나온 것처럼
(편한 설명을 위해 뭉뚱그렸습니다)
 

택견 협회가 증식할 때는
기존 협회와 대립하면서 분화하기 때문에
새로운 협회를 구성하는 인물은
기존 협회의 택견을 깊게 수련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윗대태껸 역시
'송덕기 옹에게서 제일 오래 배운 제자'라는 테제를 두고
결련택견과 전방위적으로 대립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립한다는 것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전략을 수립하고
갈등을 종식하기 위해 리소스를 투입하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행동양식을 제한하고

눈치보고,
비교하고,
고민하고,
상상하고,
상대에게 생각이 얽어매이는
비효율적인 일상이죠.
 

그런데 윗대태껸협회가 발족한 16년도에
어쩌다 떠밀려서 입문한 저는
그런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운 무균실이었습니다.
 

기존 택견을 배운 적 없는 상태에서
주 6일 2,3시간씩
고용우 선생님의 커리큘럼만을 집중적으로 학습하고
마침 왕따가 된 윗대태껸 덕분에
타 택견러들과 소통 없이 한 몇 년 살다 보면

다른 택견러들과 대화할 때 어마어마한 괴리를 느끼게 됩니다.

누구는 택견이 조상님의 배려와 상생이 담겨있다고 하고
누구는 택견이 해학적인 전통 놀이라고 하고
누구는 택견이 건강과 양생을 위한 체조라고 한다면

제가 배운 '이것'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2. 기표와 기의의 모순
 

강태경 관장님은 간판을 바꾸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언어의 역사적 의미 변화 과정에서 발생한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문제 때문에 선택한 길.'
 

말이 어렵습니다. 하나씩 풀어가볼게요.
 

MMA를 구글에 검색하면 이렇게 나옵니다.
'MMA는 스트라이킹과 그래플링을 넘나들며 다양한 격투 기술이 사용되는 격투 스포츠다.'
 

위 문장에서 
- 기표는 'MMA',
- 기의는 '스트라이킹과 그래플링을 넘나들며 다양한 격투 기술이 사용되는 격투 스포츠'입니다.

기표는 표기로 바꿔 생각하면 편하고,
기의는 의미로 바꿔 생각하면 편합니다.
 

과거 윗대태껸과 결련택견의 분화를 촉발한 논제는
'과연 이것이 태껸의 전부일까?' 입니다.
 

미국에 계시던 고용우 선생님의 등장으로 인해
마침내 태껸의 기의가 변화할 가능성이 발생한 것이죠.

- 어떨 때는 손질
- 어떨 때는 자세
- 어떨 때는 관절기
- 어떨 때는 태껸춤

윗대태껸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태껸이 포괄하는 기술과 원리가 확장되었지만,

현실적으로 택견이라는 기표가
그 기의를 다 포괄하지 못하면서
이 괴리는 심화되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가장 윗대태껸의 기의를 잘 표현하는 기표는 무엇이냐?
'스트라이킹과 그래플링을 넘나들며 다양한 격투 기술이 사용되는 격투 스포츠'
바로 MMA입니다.
 

여러분께서 생각하는 MMA의 기의가
다양한 무술들이 실력을 겨루는 플랫폼인지,
또는 그 플랫폼에서 어느 정도 정형화된 무술 형태인지에 따라
받아들이는 비중은 다르실 수 있지만
 

태껸은 당연히 MMA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MMA 정도는 되어야>
저희가 연구한 태껸,
확장된 의미로서의 태껸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 기표와 기의의 괴리를 축소하기 위해
- MMA를 내세우되,
- 태껸을 표기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다시 강 관장님의 멘트로 돌아가면,
<언어의 역사적 의미 변화 과정에서 발생한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문제 때문에 선택한 길>
 

이를 해석하면:
- 윗대태껸협회에서 진행한 태껸 연구에 따르면,
- 태껸의 범위는 기존에 택견이 의미하는 바를 훨씬 뛰어넘었고,
- 이 때문에 협소한 범위의 택견이라는 단어로는 우리의 컨텐츠를 설명할 수 없다.
- 오히려, 이를 가장 잘 대변하는 단어는 MMA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3. PJLH
 

인왕MMA 간판을 달고 나서
한편으로는 후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답답함이 생겼습니다.
 

후련한 까닭은 기의의 괴리가 (불완전하게나마) 해소되었기 때문이고,
(내가 배운 운동은 택견보다 MMA에 훨씬 가까우니까)
 

답답한 까닭은 기표의 괴리가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배운 건 태껸인데)
 

아직 윗대태껸의 행보가 미약하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저희가 주장하는 기의를 100% 수용하지 못하시는 점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저희가 태껸을 완전히 버리고 MMA 시장에 올인하거나,
태껸에 대한 연구를 중단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제 저희의 행보는
1) 확장된 태껸의 기의를 MMA 시장에서 증명하고,
2) 태껸의 기표를 바로잡기 위한 새로운 연구입니다.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오히려 시합 출전과 영상 업로드보다는
철저하게 학술 중심적인 내용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몇 분들이 짚어주셨듯,
태껸 베이스 선수 몇이 MMA에서 성과를 거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표를 근본부터 바꾸지 않으면 해프닝에 불과할 뿐입니다.
 

태껸의 기표와 기의가 모두 정립되는 순간,
저희는 다시 태껸 간판을 달 것이고,
그때도 관원분들 모두가
아무런 위화감 없이 수련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