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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Chaper9 – 이중지련泥中之鳶(2)

익명_73432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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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창에서 삼일째 되던 날부터 유진은 자신이 투기장에서 익혔던 기술들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군대의 훈련 덕분에 체력이 올라 전보다 오래 집중해서 연습할 수 있었다.

 

기껏해야 4일 밖에 못할지 모르지만, 잊어버리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그것을 숙달할 때만큼은 고민이나 잡생각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참을 움직이고 나서 휴식을 할 때면 다시금 여러가지 고민들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일어나셨을까?”

 

유진은 충일의 안부를 물어볼 곳이 없다는 것에 답답해했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겠지?”

 

그는 이 말을 내뱉고 헛웃음을 쳤다.

 

돌아간다라투기장이 집이라도 되는 거 같군

 

유진은 스스로에게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뿐만 아니라 투기장의 모든 부랑자가 그랬다. 그들은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낙오자였다. 목적지 없이 항구를 떠난 배처럼 표류하고 있는 처지였다.

 

내 고향은 어디지? 꿈에서 본 연과 관련이 있을까?’

 

유진은 11번의 출신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부쩍 고향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그러나 혼자서 묻는다고 한들 답을 얻을 길이 없었다.

 

끼익-‘

 

고민만을 반복하다 보면 11번이 식사거리를 들고 왔다.

 

오늘은 무척 피곤해 보이네

 

유진은 어느새 11번의 표정을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 보이나? 몰랐네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아무 일도 없었다

 

유진은 이 대화에서 항상 을이었다. 11번이 방어적으로 나오면 유진은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대신 그는 특유의 눈썰미로 대강의 상황 살필 수 있었다.

 

넌 책이라는 걸 읽어 본 적이 있어?”

 

뜻밖에도 11번이 먼저 유진에게 물었다.

 

? 들어는 봤어 영상장비 이전에 있었던 매체라고

 

그러나 그 주제는 유진에게 매우 생소한 것이었다.

 

그건 어디에서 봤는데?”

 

그거야영상으로?”

 

하하! 웃기는군, 진심이야

 

유진의 대답에 11번이 처음으로 웃었다.

 

그러는 넌 책을 본 적이 있어?”

 

물론, 읽어도 봤지

 

무슨 책이었는데?”

 

사회에 대한 책이었어. 아주 오래된, 듀르켕인가 하는 사람이 쓴 책이었지

 

유진은 속으로 웃긴 이름이라고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식해 보일 거라고 의식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런 말이 있었어 사회에 건전한 상태가 유지되려면 어느 정도의 범죄가 필요하다무슨 말인지 알겠어?”

 

11번이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이전까지는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아니 전혀, 이상한 이야기 같은데?”

 

유진은 약간 화가 난 듯이 말했다. 그는 먹을 것을 훔치다 모질게 매 맞은 기억들을 떠올렸다. 자신이 그렇게 수모를 당하면서도 참았던 건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책의 내용이 맞다면 부랑자들은 왜 매를 맞고 있는 거야?”

 

유진은 애둘러 반문했다.

 

그야 벌이라는 건 사실 범죄자를 고치기 위한 게 아니라 사회의 시스템을 견고하게 하기 위한 거니까. 상징적인 본보기가 필요한 거지. 넌 생각이 많은 게 장점이지만 아직 보는 눈이 없어. 보는 눈을 길러야 재고 따질 줄 알 텐데.”

 

11번은 이처럼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벽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다시 총기를 잃어갔다. 이전의 의욕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날 11번은 슬픔에 잠긴 듯 고개를 떨구고 한참을 조용히 머물다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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