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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나온 김에 씨름에 대한 생각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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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오니까 재미있는 판이 벌어졌네

 

그러니까 결국, 아래의 세가지의 조건 중 부합하는 게 있으면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무릎을 바닥에 대고 들어가는 기술이 활성화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중심이네

 

1. 서로 맞잡고 시작하는 경우
2. 발다닥 접지면을 제외한 나머지 신체부위가 땅에 닿으면 안 되는 경우
3. 벨트라인 아래를 잡는게 안 되는 경우

 

그렇지 않을 거라는 의견인 분들이 이미 많은 사례를 들어주고 있으니까 나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이 이야기에 접근해보려고 함

 

내가 이야기해보려는 건 이러함

 

"과연 조선의 씨름은 어느정도의 제약을 가지고 행해졌는가" 

 

나는 애초에 우리가 지금 아는 씨름이 근대 스포츠로 제도화 되어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증명해보려함. 

 

먼저,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아는 한국 씨름에 대한 이미지는 이럴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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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간단함 이게 딱 정규 교과과정에서 걸러서 보여준 수준이기 때문임


이러한 편견을 벗고 씨름에 대해 찾아보면 더 다양한 모습의 자료들을 찾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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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들은 김준근이라는 조선 후기 풍속화가가 그린 그림임. 보면 샅바만 잡지 않고 바지 앞단을 잡거나 심지어는 상대 머리를 잡고 시작하는 모습을 보임. 그리고 경기가 진행되었을 때 마지막처럼 다리 잡고 드는 태클도 나타남. (저 작가 특징이 오른쪽 위에 무슨 내용인지 쓰는 거니까, 저게 씨름이 아니라는 반박은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태클 받는 쪽은 발목으로 다리 걸고 허리랑 상투 잡고 버티는 테크닉도 보여줌. 적어도 처음 당해보는 상황은 아닌 거임.

 

그리고 우리가 한 가지 놓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저기가 모래판도 아니고 신발도 신었다는 거임. 맨몸에 샅바를 묶는 모양은 고분벽화외에는 보이지도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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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이런 모습이었단 거지. 처음에 언급한 규칙중에 1번이랑 3번은 구속력이 없었다고 뵈도 될 거 같음. 그럼 이제 흥미를 좀 끌었으니 사료로 넘어가겠음. 내용은 재밌는데 조금 기니까 읽어주기 바람.

 

조선왕조실록 중 영조실록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음.

 

임금이 기백(畿伯)이 아뢴 살옥(殺獄)에 대한 일로 인하여 하교하기를,

 

"이후 저자 거리에서 씨름하며 치고 때리는 일이 있을 경우에는 살인(殺人)의 여부를 논할 것 없이 그 관사(官司)에서 엄중히 장(杖) 1백 대를 때리도록 하라. 일찍이 듣건대 평양(平壤)에서는 상원일(上元日)에 석전(石戰)을 벌인다고 하니, 장(杖)으로 치는 것도 오히려 그러하였는데, 더욱이 돌멩이이겠는가? 관서에 분부해서 일체 엄중히 금지하게 하고, 경중(京中)에서 단오에 벌이는 씨름과 원일에 벌이는 석전을 포청에 분부해서 이를 범하는 자는 종중결곤(從重決棍)하게 하라." 하였다.

 

일단 이게 씨름하다 사람이 죽은 사건을 왕에게 보고하고 나서 왕이 조치를 취하는 상황임.(씨름하다 사람이 죽은 경우는 세종실록에서도 나옴) 

 

근데, 더 놀라운 건 '씨름하며 치고 때리는 일'이라는 대목임. 해당문장을 한자 원문으로 보면 此後場市角觝敺打임.

 

'敺打'

 

즉, 구타라는 표현을 씀. 다른 해석의 여지 없이 빼박 때렸다는 건데... 이러면 우리가 알고 있는 룰로는 도저히 해명이 안됨. 애초에 그 룰들이 거의 다 근대에 만들어진 거라고 봐야할 지도 모름.

 

이게 특별한 케이스라고 보기도 애매한 게 당시부터 전해지는 씨름에 대한 구전들이 전해주는 모습들이 오히려 여기에 가까움.

 

위인전 느낌의 책인 '대동기문'에는 효종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갈 때 동행한 김여준이라는 무관이 청나라 장수 의 도발에 응해 씨름을 한 장면이 나오는데, 그 묘사가 다음과 같음.

 

"주먹으로 번개같이 그(청나라 장수, 우거)의 콧구멍을 냅다 지르니, 우거가 고개를 돌려 피하므로 잽싸게 그의 허리를 껴안고 번쩍 들어 섬돌 모서리에다 내리 문지르니 우거가 피를 토하며 죽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지만, 의외로 씨름 관련 설화에서 이런 맥락을 읽어야 이해가 가는 무용담들이 많음.

 

어우야담에 나타나는 케이스를 보면 '씨름을 익힌 장사가 마을에 나타난 멧돼지를 잡는 이야기'나 '씨름 실력으로 으스대던 스님이 미역장수에게 내기를 걸고 씨름을 했다가 멱살 잡힌채로 패대기 쳐진 이야기' 같은 모습이 있음.

 

나는 이런 것들이 당시의 씨름에 대한 이미지가 지금과 달랐다는 것 뿐만아니라, 규칙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허용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생각함.

 

개인적으로 이런 토론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딱히 어느 쪽이 옳다는 생각이랑 상관없이 써봤는데, 정보글 정도로 읽어줬으면 좋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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