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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더레코드 - 힙합의 역사, 기원

익명_16139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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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퍼온 글이다 나를 욕하지 마라.

왜 퍼왔냐고? 예전에 기철이 인스타에서 힙합과 판소리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는 걸 보고선 이야기를 하니

아는 형이 90년대 힙합신에서 아래 같은 이야기가 돌았다 하면서 알려주길래 

 

구글로 검색해서 찾았다. 거의 피씨통신 시절 이야기이더만. ㅋㅋㅋㅋㅋ

 

뭔가 기철이 감성인것도 같고 ㅋㅋㅋ 그놈이 이거보고 자기가 썼다 할 것 같기도 해서 올려둔다.

 

보고 국뽕차오르진 마라 ㅋㅋㅋㅋㅋㅋ

 

 

사실 힙합의 랩은 우리나라 판소리의 영향이다?

 


 

 

 

한국힙합의 역사에 대해서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게시겠지만 힙합이라는 장르는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장르 입니다.............................

이제 부터 연재할 이 글들은

지금까지 많은 설이 떠돌았지만 제가 역사적 문헌이나 여러가지

자료를 종합하여 정리해낸 힙합계에 획을 그을 자료입니다.

이 글의 값어치는 말로 따지지 않아도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1화

우선 힙합역사를 따지자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두명이 존재합니다.

 

그들의이름은 바로 "유남인","유남생"선생 

이 두분은 옛날 많은 핍박과 멸시를 받으며 살아오다 한국을 떠나

 

낯선나라 미국으로 이민을 간 참으로 역경을 셀수 없이 겪으며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미국에 처음 도착해서 돈이 없기때문에 흑인들이 거주하는 뉴욕의 허름한 빈민촌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여러 흑인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고 그 흑인들 앞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온갖 고난과 역경을 특유의 넋두리로 표현을 하게 됩니다...

 

그자리에서 흑인들은 말은 알아들을수 없지만 뭔가 마음으로 통하는 그것을 느끼게 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후 흑인들은 그두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쫓아다니며 자신들의 애기를 음악에 실어서 표현하면서 지금의 랩이라는게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랩퍼들은 그 두분을 respect(존경)하는 의미로

랩의 중간에 '유남 생~'이나 `유남 인~~'등 그분들의 성함을 외치며 존경심을 표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많은 랩퍼들이 이 스승님들의 성함을 외치곤 한답니다...

 

 

 

2화

그후 유명세를 타게된 유남인선생은 서부쪽의 흑인들의 간절한 방문요청으로 서부지역을 방문하게 됩니다. 유남생 선생은 동부지역을 지키고요.

 

유남인 선생은 서부도시 LA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는 서부에서 오랫동안 그지역 흑인들과 생활을 하면서 서부지역 힙합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터를 잡고 결혼도 하고 살림을 꾸리게 됩니다.

이때가 유남인선생 방년 59세 입니다.

 

한편 뉴욕에 남아있던 유남생 선생은 소식이 없는 그의 형인 남인선생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형님걱정으로 불안하게 지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우연히 유남인 선생이 LA에서 부와 명예를 얻고 결혼하고 자식도 기르면서

호화롭게 살고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유남생선생은 자신은 힙합 발전만을 생각하면서 그 정신을 이어가며 가난하게 살고 있는데

아무 연락도 없이 떵떵대며 호화롭게 살고 있는 형에거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그후로 공개적으로 자신의 형인 유남인 선생을 비난했고 동부 지역의 흑인들은 유남인 선생에대한

반발감과 아울러 서부지역 사람들에 대한 반발감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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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서 동서간의 갈등은 시작되었고 두 선생들의 제자인 2pac과 biggy는 절친한 사이였지만 이젠 서로를 맹렬히 비판(Diss)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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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East-Coast versus West-Coast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결국 유남생 선생은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아랫 사람들에게 2pac의 살해지시를 내립니다.

 

2pac은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됬고 이에 화가 난 유남인은 biggy를 죽이는 것으로 이 사건은

젊은 실력파 rapper두 명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마무리 됩니다.

 

 

 

3화

이후 유남생 선생은 더이상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걸 원치 않았고
또 자신이 아끼던 동생들을 잃게 된 슬픔으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홀로 떠나고 맙니다.


자신이 그들을 죽게만들었다는 죄책감을 짊어지고 지금까지 해놓은 모든 업적을 뒤로 한 채......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그가 사라지게 되자 매우 안타까워 하며

 

그를 그리워 하였습니다.

 

그 후로 그는 아직까지 소식이 없습니다....

자살설,결혼설,3국으로 도피설등 많은 소문이 뒤를 따르곤 있지만 아무도 그의 소식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유남인 선생은 외부와의 접촉을 피한채 가족과 LA에서 계속 살고있다는 설이 있습니다.

 

 


부록

힙합이라는 명칭의 유래

남생남인 형제가 처음 미국에 와서 지금의 랩이라는 것을 할때,


그들은 자신들의 지난 억눌려져 있던 분노를 심한 욕설과 함께 표출했습니다.

 

그러면서 '씨발'이라는 말을 자주하게 됬고 흑인들은 그 단어를 따라했지요.

 

ssibal->ssibbah->ssipah->shipah->shiphap->hiphap->hiphop

 

학교다닐때 국어공부를 열심히 하셨다면 이 현상에 대해 쉽게 이해하실 수 있겠죠...

 

그리고 이 분야를 깊게 판 학구파rapper들은 한글을 배워 그들이 자주쓰던 말을 영어로 번역해서
자신의 랩에 집어넣기도 하였죠.(예 니미씹할->mother fucker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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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바지의 유래

보통 우리나라에선 통이 크고 흘러내릴 듯 하게 크게 입는 바지를 힙합바지라고 말합니다.
미국의 hiphoper들도 이런 바지를 입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죠..


이 바지가 무슨 흑인들이 가난해서 아버지 바지를 물려입어서 그렇다느니 죄수복
이 어쩌니 하는 설이 있으나 조사해본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예전 남인,남생선생이 미국에 갔을때 그들은 한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흑인들은 그 바지 스타일에 묘한 매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복 바지스타일을 그대로 채용해서 입게 된게 지금의 배기 바지(힙합비지)입니다.

 

denim이라는 단어도 사실 한복바지의 밑단을 조여주는 데님 에서 온 것입니다.

(의사전달이 잘못되어서 지금은 청 소재 를 일컫는 단어가 되었지요)


여담으로 hiphop을 하는 사람들이 검정색이나 원색계통의 옷을 즐겨입는데
이도 그들이 입고간 두루마기나 한복의 스타일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slang

흑인들의 슬랭 중에는 thug(한글로 구지 해석 하자면 건달정도?)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슬랭의 어원에 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유남생&유남인 선생은 미국에서 흑인들을 만날때 그들 중 허우대(덩치) 좋은 사람들을

보고 떡대 라고 불렀습니다. 지금도 많이 쓰는 속어이지요.

 

바른 언어생활을 하시는 분들은 모르실지도

예로서 그런 사람을 부르는 속어로는 떡대, 고기, 깍두기 등등 이 있습니다.

 

그 단어역시 커뮤니케이션의 미쓰로 덩치좋은 사람에서 깡패(정확한 지격은 아니지만)

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떡을 영어로 옮겨 적은것이 THUG이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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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Q. 글을 보면 힙합의 역사는 꽤 오래 된것 으로 알고 있는데 2pac이 죽은 시기에 비해선 나이가 너무 어린 것 아닌가요?

A. 그의 등장으로 힙합이 등장 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rap이라는 게 그에 의해 급속히 발전됬다는 얘기입니다.

 

Q.유남인선생 이름이 원래 유나민 아닌가요?

A. 저번에 디지(INSANE DEEGIE)님과 이에 대해서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그분도 유나민선생으로 알고 계셨습니다.많은 분들이 그렇게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많은 문헌과 현지의 어르신들의 말씀에 따르면 유남인이 본명인 것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결정적인 근거는 그분들의 아버지 유달봉님의 오래된 일기장의 한 구절입니다.  본문 '둘째의 이름은 남생으로 지을것이다. 첫째 男仁과 돌림자 남男날 생生 男生 남자의 인생, 남자답게 살라는 뜻이다.' 이 구절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에필로그:

지금까지 제가 들은 가장 많은 얘기는 당신의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전혀 상상도 못한 일들이었다

 

난 지금까지 미국의 흑인들이 힙합의 원조인 줄 알았다 당신은 이런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나?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들을 보고 매우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정말 무서운 나라라는 걸 다시 금 느꼈습니다.

 

이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힙합은 한국인이 퍼트린 한국문화입니다..

 

미국은 힙합이라는게 많이 커지고 문화로서 발전함에 따라 이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도 전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전파되온 것이라는 사실에

매우 안타까워 했습니다. 결국은 미국이란 나라는 이 사실을 자신들

맘대로 조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의 역사 왜곡이 시작된 것이지요.

 

이때 ssipah라고 흑인들에게 불리우던 명칭을 엉덩이를 흔들다라는 말도 안되는

뜻을같다붙인 'hiphop'이라고 개정하였고 유남인 유남생 형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음반에 녹음되있는 존경하는 의미로 두 스승 분들의 이름을 부르는(shout out)

 

그것을'you know what i mean?' 'you know what i'm sayin?'이 것을 빠르게 불러서

유남 인~? 유남 생~? 이라고 한다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소문을 퍼트립니다.

일본 교과서 왜곡과도 같은 맥락이지요.

 

제가 이 글을 힘겹게 집필한 이유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미국본토의 힙합을 추종하고

한국의 힙합에 대해서는 한국이란 이유로 무조건 배척하고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들에게

 

힙합의 원조는 한국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고

 

이 문화에대한 자긍심을 가지도록 하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지금까지 어처구니 없고 유치할지도 모르는 논문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남생연구소 협회장 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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