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속인간문화재5: 택견 송덕기 (예용해). 한국일보 1964년 5월 16일 토요일

익명_95344048
514 0 3

속인간문화재5: 택견 송덕기 (예용해). 한국일보 1964년 5월 16일 토요일

百技神通飛脚術

 

일흔인데 "아직 젊은 놈 하나 둘쯤..."
고의적삼에 솜버선 바람으로

 

한국일보1964년 5월16일(7면) 속인간문화재.jpg

 

[우리말 큰사전]에 [택견]또는 [태껸]으로 보인다. 풀이하기를 "한 발로 서로 맞은편 사럼의 다리를 차서 넘이뜨리는 경기, 각희"라고 했다. 이보다는 좀 오래인 조선총독부의 [조선어대사전]에는 [택견]이라 했고 "한쪽발로 서로 넘어뜨리는 유희, 각희"로 풀이 되어 있다. 이 두 기록 사이에는 자그마한 차이가 있는 것을 알겠다. 시내 사직골에서 나서 사직골에서만 살아 왔다는 송덕기씨(71세 종로구 사직동 130의 2) 말은 태껸도 아니고 택견도 아니며 탁견이요, 한자로는 卓見이라고 쓰며 탁견을 하는 사람을 말할때는 택견꾼이라는 것이다.

 

송씨는 18세때 사직골 뒷산 단디밭에서 그때 29세된 임호라는 이에게서 배워 지금으로서는 살아있는 유일의 택견꾼이다. 의당 그 분의 말을 곧이 들어야 할 일이나 고사에 밝다는 노인들의 말을 들으면 한결같이 택견이었지 태껸이나 탁견은 아니라니 난처하다. 또 탁견이란 말의 전가라도 얻을까하고 고려사 또는 이조실록의 색인 등속을 뒤져 보아도 도무지 그런 것이 눈에 뜨이지 않는다. 다만 이와 비슷한 것을 찾자면 手搏(拍)戱, 각저희가 고려사와 이조실록에서 각각 몇 대목 적힌 것을 본다.

 

태껸, 택견, 卓見
활락한 기록 가운데서 가물에 콩보다도 더 드뭇하게 적힌 짧은 글로는 수박희나 각저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소상하게 알 도리는 없으나, 전자가 손으로 하는 노릇이고 후자는 씨름이리라고 짐작은 간다. 또 두가지가 다 戱로 적혀있으면서도 수박희는 무인들에 대한 試才의 대상이었던 것이 분명한데 각저희는 그런 흔적이 없었으니 수박희는 수련을 쌓아야 하는 특기임에 반해서 각저희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대중의 놀이임이 분명하다. 택견은 어느 편에 드는 것일까?


송씨 말대로 유래가 깊은 것이라면 탁견이 몇 세시기나 문집 등 책자 어느 한 구석에라도 적혀있음직한데 기록으로 보이는 것이 없는 것 같으니 혹시 옛날 글을 많이 본 분네 가운데서 여기에 관한 것을 ㅇㄺ은 기억을 지닌 분은 없을까 하여 안타까왔다.


그 기원과 오늘에 이른 내력이 감감하니 어떻게 말머리를 잡을길이 없어 행여나하고 [무예총보]를 뒤져 보아도 장창, 죽장창, 기창, 경파, 낭선(狼?), 쌍수도, 예도, 왜도, 제독검, 본국검, 쌍검, 월도, 협도, 권법, 곤봉, 편곤 등 17개보가 보이는 가운데 택견의 원형이 될만한 것은 엇고 권법 속에 발을 쓰는 몇가지 법에 유사한 것이 있ㅇㅆ다. 권법은 주먹을 주로 쓰는 것이고 택견은 발질이 대부분이니 그 바탕이 서로 다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단오밤에 마을대항
이렇듯 붓을 잡지 못하여 ㅅ성대고 있는데 우연히얻오본 [해동죽지]라는 책에 한 대목 있다.
책은 구한말의 시인 루하 최영년의 시집으로 여러가지 우리 풍습을 읊은 가운데 "托肩戱"라 하여 한 수 끼여 있는 것인데 더욱 다행인 것은 시에 주석이 따른 일이다.


百技神通飛脚術
輕輕掠過?簪高
鬪花自是風流性
一奪貂蟬意氣豪

舊俗有脚術 相對以立 互相蹴倒 有三法 最下者蹴其腿 善者托其肩 有飛脚術者 落其? 以此或報仇 或睹奪愛姬 自法官禁之 今無是 戱名之曰 탁견.


위의 시와 주를 '輕輕'히 우리글로 옮겨서 '풍류성'을 저버리게 하느니 차라리 송씨의 말을 적는 것이 가장 알맞는 풀이가 될 듯 하다.


송씨에 의하면 택견에는 이십종류의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수도 좌우로 나누어서 이십개종이니 왼쪽과 오른쪽을 가리지 않으면 반수로서 별항과 같다.


지금부터 반세기전 송씨가 택견을 배울때만 해도 서울의 사직골, 무와관, 유각골, 옥동, 삼청동, 애오개 등지에 택견꾼들이 있어서 뒷산 잔디밭이나 개천 사장에서 열심히들 배웠다. 택견은 일년 내내 하는 것이 아니라 단오무렵에만 이웃 마을과 수를 겨누며 노는 것이어서 단오를 앞둔 보름이나 열흘 동안을 하는 것이 그때의 풍습이었다.


옷은 특별한 것이 없다. 고의 적삼에 솜버선을 신고 버선발로 하기 마련이었다. 처음에는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뭇가지에 권투연습을 할 때 쓰는 샌드복스처럼 짚으로 사람 형용을 한 것을 매달고 아랫도리는 마대같은 것으로 동여서 발질을 익힌다.

 

열경에 쫓기며 배우
그러자니 도장이 있는 것도 아니겠고 또 그때는 합명후였으므로 일인순사들이 택견을 금하고 있었으므로 멀리 순사가 오면 와르르 달아났다가 또 모여서 하곤 하느라고 제대로 스승한테서 조목조목이 배우질 못했다고 송씨는 지금도 안타까와한다. 그러니 매화산인이 읊은 백기신통비각술의 백기는 다소 시적인 과장이라 손치더라도 송씨가 말하는 기의 이십종류 보다는 좀 더 많은 법이 있을 법한데 지금에 와서는 온전한 것을 알 도리가 없다.


단오날 밤 달밝은데 한 머리에서는 그네 뛰고 호각불고 다른 한쪽에서는 택견을 얼리는데 마을 사람들끼리 겨루는 것보다는 타동과 겨루는 수가 많았다고 한다. 또 택견을 낮에 하는 일이 없고 언제나 밤에 하기 마련이었다니 그것은 매하산인의 주처럼 '法官禁止'의 탓인지 혹은 자고로 그런 것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땐 이름난 "난봉"
칠십난 지금도 돋보기를 끼지 않고 신문을 읽을 수 있따는 송씨는 "젊은 놈 하나 둘쯤 움쩍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웃는다. 사직골에서 송태희씨의 칠남칠녀의 막내로 태어났다는 그는 처음에 보신책으로 택견을 배우기는 했으나 평생 남하고 시비한번 못해보았다고하며 한때 장안에서 이름난 "팔난봉 칠깍쟁이"가운데 끼일만큼 난봉꾼으로도 이름있었다면서 슬하에 의동아들만을 둔 것도 젊어서 너무 바람을 피운 때문일 것이라한다. 거무스름한 얼굴에 대살진 몸매에서 조금도 늙음을 볼 수 없다. 요즘도 오십년래에 계속해오는 활을 쏘기 위해서 아침마다 집뒤 사정, 황학정에 오르고 낮에는 복덕방에 나가고 있다.


한번 본을 보여달라는 청에 선뜻 일어서더니 우쭐우쭐 몸을 스쳐 놀다가는 슬쩍 앞으로 한발 다가서면서 상대방의 배를 치면서 다시 뒤로 물러 서면서 몸을 솟쳐 지르는 것이 눈 깜짝할 사이다. 몸을 능청능청 는지르다가 솟으면서 지르는 폼은 근래 유행했던 '튀스트'의 율동감과 비슷한 것이 있다. 송씨는 지금 세간에서 성한 당수, 공수, 태권, 수박, 태수에서는 '곧은발길'질을 하지만 택견은 발을 꼬아서 발장심으로 치는 '늦은발길'질이니 같은 발질을 해도 다르다는 얘기였다.


또 택견에서 몸을 능청대며 는지르는 것도 덮어놓고 하는 것이 아니고 발을 품자로 놓는다는 약속이 있으며 누구든지 땅에 먼저 손을 짚으면 패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택견은 최근세까지 있어오던 技였음에도 그 전모를 알기가 이렇게 감감한 일일뿐 아니라 이름까지도 택견, 탁견, 태껸, 卓見, 托肩하여 종잡을 수가 없다. 여기서는 여러 고로들의 기억을 존중하여 택견으로 해두었으나 이름도 바르게 통일을 해야 할 것이고 모두한 사전의 풀이들도 고치거나 아니면 보완해야 하지 않을까 하여 새삼 세월이 지니는 망각의 힘이 위대한 것에 놀라게 된다.

 

"택견"의 열한가지 기본수
*깍음다리-발장심으로 상대방의 무릎을 찬다. 치이면 정강이 살이 벗겨진다.
*안짱걸이-발등으로 상대방의 발뒤꿉을 안에서 잡아 끌어 벌렁나가자빠지게 한다.
*안우걸이-발바닥으로 안복사뼈를 쳐서 옆으로 들뜨며 넘어지게 한다.
*낚시걸이-발등으로 상대방의 발뒤꿈을 밖에서 잡아끌면 뒤로 훌렁 넘어진다.
*명치기-발장심으로 명치를 찬다. 벌렁 넘어지면서 피를 토하고 죽는 위함한 수다.
*곁치기-발장심으로 옆구리를 찬다.
*발따귀-발다박으로 따귀를 때린다.
*발등걸이-상대방이 차려고 들면 발바닥으로 발등을 막는다.
*무르팍치기-상대방이 쳐서 들어오면 손으로 그 발뒤꿉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옷을 맞붙잡아 뒤로 넘어지면서 발로 늦은배를 괴고 받아 넘긴다. 발등걸이와 무르팍치기는 다같이 수세에 있으면서 쓰는 수다.
*내복장갈기기-발장심으로 가슴을 친다.
*칼재비-엄지와 검지를 벌려 상대방의 목을 쳐서 넘긴다. 칼재비는 택견에서 손만을 쓰는 단 한가지의 수다.

 

 

<사진 캡션> 몸을 능청능청 는지르면서 발질을 해보는 송덕기씨.

 

한국일보1964년 5월16일(7면) 속인간문화재.pdf

신고공유스크랩

한달이 지난 게시글은 로그인한 사용자만 토론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공유

퍼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