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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Chaper10 – 이전투구泥田鬪狗(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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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물기둥이 솟았다 가라앉았다. 하늘에서 비라도 내리는 것 같은 풍경이었다. 검은 빗줄기가 멎은 그곳에는 유진이 서 있었다. 하나 둘 바닥에 드러눕는 동안 유진은 깨끗한 얼굴을 유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진이 충일에게 보고 배운 기술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파묻거나 몸을 엉키지 않고 팔이 닿는 거리에서 결판을 내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유진은 잠시 숨을 고르며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적막했다. 자신만이 살아남았다고 보아도 될 정도의 소강상태였다. 바람소리인지 물소리인지 모를 애매한 소음만이 들려왔다.

 

‘사악-- 사악--- 통!‘

 

통? 묘한 기시감을 주는 소리에 유진이 뒤돌아 섰다.

 

”하... 가능하면 다른 중대원들 선에서 해결되길 바랬는데“

 

그리곤 한탄하듯 말했다. 휑한 진흙탕 위에 11번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또한 멀끔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내심 신경쓰였다.

 

“자 현실을 직면할 시간이야. 언제까지 미뤄둘 순 없잖아?“ 

 

“이게 뭐라고“

 

”나도 지쳐 근데 해야할 일이 남았잖아“

 

서로의 말이 오가는 그 사이에 둘은 본능적으로 거리를 좁혀갔다. 손 끝이 닿을 거리를 찾아서. 조금씩, 조금씩 잠식해가는 모양으로. 이를 바라보던 모든 유격대원들은 수면이 차오른다는 착각마저 느꼈다. 공방 한 번을 주고 받지 않았는데 이미 숨 막히는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마침내 거리에 들어오자 유진이 먼저 툭, 툭 손을 밀며 간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11번이 횡으로 발을 옮기면서 파고 들었다. 유진이 뻗은 팔의 팔꿈치를 쳐 올리면서 시야를 가리고 사각에서 주먹을 찔러넣었다. 유진 쪽에서 보자면 자신의 겨드랑이 아래에서 느닷없이 주먹이 튀어나오는 모양새였다. 

 

'퍽-‘

 

처음이었다. 유진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얼굴 맞는 경험을 했다. 주먹에 진흙이 묻어 있어 미끄럽게 굴절되었지만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웃고 떠들 때가 아니었지 참. 난 이곳에서 누구한테도 져서는 안돼. 그때를 기억하자. 풀어지면 죽는다.’

 

찰나에 눈빛이 바뀌었다. 유진은 11번이 팔을 끌어당기는 것을 보고 역으로 따라들어갔다. 그러더니 손목으로 그 팔 안쪽을 제껴올렸다. 순식간에 안면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퍼-벅!’

 

유진은 그 길로 연타를 쳤다. 이번 만큼은 한 방 먹여줬다고 할 수 있었다. 11번은 자신이 상대를 얕봤다는 사실을 빠르게 인정했다. 코가 시큰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금새 호흡을 되찾았다.

 

“와, 미쳤네”

 

허를 찌르는 연격에 유격대원들이 숨을 죽이고 단발적인 감탄을 내뱉었다. 그렇게 시작된 공방은 그들이 이전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어르고, 치고, 걷어내고, 다시 치는 수싸움의 연속. 무뢰배들의 싸움은 금새 한 쪽의 일방적인 구타로 끝나는 데, 이들의 싸움은 언제 끝날 지 가늠할 없었다. 아주 미묘한 균열 그것이 만들어낼 틈새가 싸움을 결정지을 터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었다.

 

“면치기”

 

11번이 유진의 손 동작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그리고 다시 코 앞에서 주먹을 피하면서.

 

“코침치기”

 

무슨 영문으로 이러는 거지. 일부러 당황시키려고 헛소리를 하는 건가. 유진은 혼란스러웠지만 계속해서 주먹을 내질렀다.

 

“어르고 면치기. 걷어내고 코침치기. 곧은발... 아 지금은 발을 못쓰는구나 아쉽네”

 

“도대체 뭐 하는 건데?”

 

유진이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주먹이었다. 

 

‘퍽-’

 

얼굴을 가리고 있는 팔을 뚫고 주먹이 들어왔다. 힘이 빠진 탓에 잠깐만 신경을 쓰지 않아도 공격을 허용하게 되는 것이었다.

 

‘예측하는 건가? 아냐 달라 차라리 분석, 해설하는 것 같아. 얕보인 건가. 그것도 아니면’

 

유진이 어떤 의구심에 도달할 때쯤 공방이 멈췄다. 11번이 돌연 물러서 거리를 벌이더니 두 팔을 허리춤 아래로 펼치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네가 배운 그 기술, 그게 뭔지는 알아?”

 

그는 마치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처럼 기다리는 모양을 하고 섰다. 팔을 슬며시 허벅지 위로 올리더니 아예 무릎을 짚고 쉬는 흉내를 냈다.

 

“뭐하는 거야 싸울 생각이 사라졌어?”

 

“아니, 힘이 남았으면 지금 당장 덤벼도 돼”

 

유진은 그를 쩨려보았다. 무릎을 짚고 쉬면서 눈을 치켜뜨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껄끄럽게 느껴졌다. 답은 무게중심에 있었다. 불필요한 동작 같으면서도 바로 방향전환이 기능하도록 무게중심을 적당한 위치에 얹어두고 있었다. 유진은 이것을 본 적이 있었다. 무제가 항시 몸에 두르고 있던 여유가 거기서 나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너 진짜 정체가 뭐야”

 

“그건 일이 끝나기 전에는 말해줄 수 없어“

 

”그럼 왜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어떻게 해야 그 일이라는게 끝나는 건데“

 

”가야 끝나. 네가 그곳에 도달해야 해“

 

“왜 하나같이 그런 의미 모를 말만 하는 거야?”

 

11번이 쿡쿡 웃었다. 유진을 포함한 모든 유격대원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략했다.

 

“내가 왜 이 말을 꺼내는지 정말 모르겠어?”

 

그는 이번엔 다른 의도 없이 답답함에 몸을 일으켰다. 당연한 걸 모르는 것이 의아하다는듯 고개를 가우뚱 거리면서 다그쳤다.

 

“그건, 선생님이..”

 

“알고 계실까?”

 

“아마도 아니 분명!“

 

11번이 어이가 없다는듯 웃었다. 유진은 그 웃음에 흠칫 놀랐다. 자신을 속속들이 아는 것 같이 구는 그의 태도에 기분나쁜 소름이 끼쳤다. 

 

“이름도 모르면걸 왜 하는 거야?“ 

 

“너야말로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유진은 홧김에 성큼성큼 다가갔다. 11번도 팔짱을 끼고 바라볼 뿐 대응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물론, 착각이었다. 유진이 부랑자 시절의 느낌으로 가슴을 쳐 밀려하자 11번의 팔짱 손이 올라와 팔을 잡아채고 목을 밀었다. 손목에서 얼굴로 이어지는 부위를 비틀어 조여놓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이크”

 

11번의 얕은 기합과 겹쳐서 유진은 물밑에서 발을 채어지는 것을 느꼈다. 몸이 홱하고 돌았다. 풍차가 돌았다. 유진이 그대로 얼굴을 물에 처박고 어푸거렸다. 한참 허우적 거리다 몸을 일으켰을 때 11번은 이미 참호를 떠나고 있었다. 

 

“뭐야, 끝난 거야? 이렇게?“

 

유격대원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몰려들었다. 11번은 부상을 핑계로 해명을 했다. 다리에 쥐가나서 버팅기다가 기회를 봐서 넘겼다나. 유진에게는 기가 차지 않는 변명이었지만 다른 유격대원들은 수긍하는 분위기 였다. 정작 다리에 쥐가 난 건 유진이었음에도. 

 

이 일을 마음에 담아 둘 시간은 없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서로의 위치로 돌아와야 했다. 폭풍전야라고 하던가. 즐거운 한 때는 물러가면서 최악의 난제를 데리고왔다. 출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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