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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Chaper10 – 이전투구泥田鬪狗(3)

익명_8350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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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는 지도 위에서 지워진 공간이 있다. 고도로 발달한 위성조차도 들여다 볼 수 없는 곳. 가진 게 없는 자들의 땅 '0구역'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종의 이유로 신분도 그 어떤 행정기록도 남기지 않는다. 그곳에는 진정한 의미로 권력자가 없다. 가족관계를 기반으로 한 소규모의 집단들이 뭉쳐있을 뿐이다. 패권을 탐내는 자가 나타나면 구역 구성원들이 엄격히 처벌한다. 이마저도 한 구역의 권력자급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외부인은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누가 살고 있는지 절대 알 수 없다.

 

"우두머리가 되려는 자 그 목을 내놓아라..."

 

"뭐라고 했어?"

 

"..."

 

“분대장! 곧 우리 차례야. 정신차려. 너도 풀어지기도 하는구나. 헛소리도 다하고. 훈련할 때는 그런 적 없으니까 걱정 안하지만. 기왕이면 다같이 즐기는 것도 어울려 주라고”

 

간혹 11번이 부재할때 대리 임무를 맡았던 분대원이 그를 다그쳤다. 

 

"어, 그래 잠깐 꿈을 꿨나봐"

 

"백일몽 같은 건가? 아무튼 슬슬 일어나자"

 

즐거운 분위기로 서로를 다독이는 소리와 함꼐 1분대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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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의 순서는 분대장들의 가위 바위 보를 통해서 결정했다. 유진은 가위 바위 보에서 이기고 후공을 가져갔다. 하루에 이어지는 경기 특성상 첫번째 경기를 한 팀은 체력이 빠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차전, 2분대와 3분대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어디 전력이나 파악해볼까?”

 

유진은 경기가 잘 보이는 곳에 앉아서 여유를 부렸다.

 

참호에서는 2분대가 먼저 들어와서 1분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1분대가 멀리서 걸어왔다. 11번은 후미에 있었다. 사뭇 진지한 눈빛을 한 11번이 물에 들어오자 모두 진형을 잡기 시작했다.

 

“준비되면 이야기해”

 

“준비됐습니다!”

 

교관의 말에 양 팀이 서로 눈치를 보고 답변했다.

 

“그럼, 시-작!”

 

구령이 끝나기 무섭게 2분대가   물을 첨벙이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물이 사방으로 튀는 모습이 볼만 했다. 반면 1분대는 몇걸음 나아가지 않은 채로 2분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쳐!“

 

새롭게 2분대장을 맡은 인원이 외치자. 2분대원 모두가 괴성을 지르며 각개전투를 펼쳤다. 

 

”으아아!“

 

뙤앙볕 아래 나름대로 다부져진 몸을 한 사내들이 몸을 부딪혔다. 물의 저항과 불안정한 진흙 바닥 탓에 왜소한 사람들은 부딪히는 순간에 바로 넘어뜨려졌다. 그 덕에 전투의 초반은 상대적으로 체격이 좋은 2분대가 승기를 잡고 있었다.

 

“순식간에 승패가 결정되겠어”

 

유진의 옆에서 경기를 보던 분대원이 말했다.

 

“아니 아직 속단하긴 일러”

 

유진은 모처럼 수다에 가담했다. 

 

“하지만 1분대가 밀리고 있는 건 확실해 보이는데?”

 

“참호격투는 종착점에 도달해야 하는 달리기가 아니야. 참호의 끝에 몰려도 그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역전의 기회가 있지“

 

”문 앞에서 승부가 뒤바뀔 수도 있다는 거구나?“

 

유진은 분대원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에겐 확신이 있었다. 1분대가 무언가 준비했을 거라는 믿음이.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번 대화에서 11번이 참호격투에 대한 여러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동쪽으로 모여!”

 

그때였다. 11번이 1분대에게 소리쳤다. 그건 단순히 이동에 대한 지시가 아니었다. 전술을 수행하기 위한 약정된 신호였다. 1분대원들은 산개된 진형을 다시 한 곳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2분대의 한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뭐하는 거지?”

 

유진의 분대원이 물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참호격투에서는 불문율이 있어“

 

“불문율? 어떤..?”

 

“실력이 좋은 사람이 가장 먼저 탈락한다. 초반에 힘을 모아 상대 팀의 가장 위험한 인물을 제거하는 선택을 한다는 거지.“

 

자신의 팀에서 최후의 승자를 남기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전력이 남아있을 때 힘을 모아 위험요소를 제거한다. 유진이 1분대장을 통해 들었던 내용이었다. 

 

“이야아!”

 

1분대원들이 2분대에서 가장 힘이 좋은 22번을 금새 쓰러트렸다. 그리고 그대로 한 명씩 차근히 무너뜨려갔다. 산개해 있던 2분대원들은 손을 쓰지 못하고 한 명씩 당하고만 있었다.

 

 “이대로 끝내버리자!“

 

”좋다!“

 

1분대원들의 사기가 끌어올랐다. 

 

사실 초기의 제압이 최대한 빠를 수록 좋다는 것을 고려하면, 1분대의 움직임은 늦은 감이 있어보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지금과 같은 역전이 가능했던 것은 2분대원들에게 참호전투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었다.

 

“아 이거 한 방 먹었는 걸?”

 

그 사실을 안 유진이 탄식했다.

 

이 순간 이후로는 모두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될 것이 분명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한 이상, 앞으로의 승부는간발의 차이로 결정될 것이다. 난이도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졌지 쉬워지지는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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