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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Chaper4 - 점화(1)

익명_08198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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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서와의 경기가 있던 날 밤 충일은 자신을 찾아온 유진에게 말했다.

 

오늘 겪어보았듯 얼르는 건 주도권 싸움이다. 소나 용이 머리싸움을 하는 것과 같지

 

!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해주시지

 

말하면, . 네가 소를 본 적이 있냐 용을 본 적이 있냐. 다를 거 없다

 

...”

 

유진은 충일의 일갈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유진의 투정이 잠잠해지자 충일은 묵혀왔던 조언을 넌지시 던졌다.

 

상대는 나무와 같다. 그 풍성하게 자란 나무를 쓰러트리려면 밑동을 쳐야 한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가지부터 쳐야 한다, 가지를 치고 줄기가 드러났을 때 도끼질을 할 수 있지.”

 

충일이 전에 한 적 없는 비유적인 표현이었다. 유진은 처음엔 의아해했지만, 이내 짐작했다.

 

아 이건 이 사람도 전해 들은 내용이구나

 

유진은 이미 충일의 기술이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닐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것 또한 아니었다. 더욱 복잡하게 여러 세대를 거치며 축적되어 온 기술일 것이다.

 

날아오는 것은 막고 던진 건 걷어내라

 

충일은 유진의 표정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유진은 경청했다. 그러나 몇 겁을 올라갈지 모르는 세대의 말을 단박에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주먹은 걷어내고 발은 막으라는 건가요?”

 

유진은 이야기의 흐름을 끊고 싶지 않았지만, 알아야 했기에 물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 다리도 잡아서 걷어낼 수 있다. 빠르지 않거나 반복되는 공격을 걷어내고, 그럴 여유 없이 당장 반응해야 하는 기술은 막으라는 거다

 

충일은 자신이 이해한 대로 설명해주었다. 그 모습은 꽤 즐거워 보였다. 자신이 기술을 숙련할 때를 추억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예측을 잘하면 모든 공격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도 있나요?”

 

유진은 그러한 모습에 안심하고 질문을 이었다.

 

역량에 달렸지. 예측이 가능해도 힘이 좋거나 속도가 감당할 수 없게 빠르다면 걷어내지 못한다. 반대로 네가 막는 기술에 대해 역량을 키운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압도적인 실력 차이가 없다면 막는 건 어느 정도 타격이 있기 마련이야.”

 

유진은 거기까지 듣고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배우고 익히는데 몰두했다. 그러는 사이 충일이 투기장에 오르는 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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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일이 투기장에 올랐을 때, 관중은 환호했지만 부랑자들은 침묵했다. 그들은 결과를 알 수 없는 경기에 대해 말을 아끼려 했다. 지난번 사건의 여파였다. 그들은 섵부른 언행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충일이 의족을 달고 느린 걸음으로 투기장에 올랐다. 그 발걸음이 닿기까지의 장내의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이전 대기실의 것과 같았다. 두려움과 조롱, 물론 권력자들이 채운 관객석에서는 조롱이 지배적이었다.

 

순 쑈야. 병신인 척, 쑈해서 방심하게 하려는 거라고!”

 

어리석은 언행으로 크게 망신을 보았던 조롱꾼이 목을 부여잡고 지껄였다.

 

아니 확실히 다리에는 문제가 있어. 익숙해질 시간조차 없었는데, 멀쩡한 게 말이 안되지.”

 

태호가 반박했다.

 

내 목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이렇게 목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게 만든 게 저 노인네라고!”

 

그래, 너야말로 다시 생각해봐 너를 상대할 때도 일부러 서 있던 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 기술들을 썼어

 

아니......”

 

조롱꾼이 분에 못 이겨 이를 갈았다. 태호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투기장 위에서 더욱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걱정이군...”

 

태호가 충일의 상대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그곳에는 유진에 비할 수 없이 좋은 전적을 보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한주로 성 없이 이름만을 가지고 있었다. 권력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통제가 안 된다는 이유로 가문에서 제명당한 뒤로 성을 잃은 것이었다.

 

재밌네, 가문으로부터 떨어져나온 사람 둘이 붙게 되고

 

한주가 먼저 말을 걸었다.

 

우연이라고 생각해?”

 

...!”

 

충일의 답변에 한주가 동의하듯 한숨을 쉬었다.

 

어쩌겠어 난 더 이상 유력한 가문 자제도 아닌데

 

한주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반대로 나를 잡게 해서 가문으로 돌아올 명분을 주는 걸 수도 있고... 너 넘기는 게 특기잖아

 

안 잊었네? 네가 없을 때 투기장에 서서 기억 못할 줄 알았는데

 

충일이 날카롭게 말하자. 한주의 눈빛이 바뀌었다. 더 숨길 것이 없다고 생각한 한주는 잡아 넘기고 메치는 것이 특기인 그래플러 답게 자세를 낮추었다.

 

같은 부대 출신인데 잊을리

 

충일이 말을 다 잇기 전에 한주가 달려들었다.

 

!”

 

충일이 순간적으로 다리를 뒤로 빼며 앞으로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의족이 달려있는 다리가 제대로 땅을 짚지 못하고 바닥에 끌렸다.

 

슬프군, 그 대단한 교관이 이렇게나 흐트러지다니

 

한주가 으스댔다. 한주는 충일을 부여잡고 집요하게 흔들었다. 버티고 있는 나머지 한 다리를 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충일이 한 발로도 지치지 않고 무게중심을 옮겨가며 버티자. 이번에는 바닥에 메다꽂기 위해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충일은 부러 같이 뛰어오르며 손으로 한주의 어깨를 짚었다.

 

그리곤 온전한 한쪽 다리를 한주의 오금에 걸치고 의족이 빠진 다리로 한주의 반대쪽 골반을 눌렀다.

 

대단하군

 

멀리서 태호가 감탄했다.

 

왜 움직이지 않죠? 선생님은 어째서 저 남자의 머리채를 잡고있는 거고요

 

옆에서 경험이 적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유진이 물었다.

 

가만히 있던 게 아니야, 한주가 다리가 묶인 것을 알고 과감하게 앞으로 넘어지려 했어. 그런데 노인네가 그것마저도 막은 거지. 저렇게 머리채를 잡아 뒤로 젖히면 무게중심이 뒤로 쏠려서 허리에 무리가 가거든

 

그러면..!”

 

그래, 계속 싸우고 있는 거야. 누가 오래 버티는 지에 따라 결착이 나겠지

 

태호의 말에 유진이 숨을 참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영상을 전시한 광고판에서 본 고대 유적의 조각처럼 보였다. 근육이 한껏 솟은 채 하늘을 떠받치던 역사의 모습, 그 자체였다.

 

-‘

 

팽팽하던 균형이 무너졌다. 한주가 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순간, 힘이 빠지고 만 것이다. 이토록 불리한 여건에서도 충일이 한 번 더 승기를 잡았다.

 

좆됐네..”

 

한주가 맥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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