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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Chapter3 - 검불과 깃털(3)

익명_3560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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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잡이 수리, 서기관조라고도 불리는 새는 긴 다리를 이용해 뱀의 머리를 짓밟는다. 우아한 날개를 펼쳐 보이기는 하나 일반적인 맹금류와 달리 사냥할 때 상공을 배회하지 않는다. 이 새는 먹이에게 섣불리 부리를 들이밀지도 않는다. 독에 대한 내성을 키우지 않은 대신 인내심을 가지고 발길질을 한다. 그런 방식으로 포식자의 영역에 있는 코브라를 밟아 죽인다. 외국인의 눈에 유진은 마치 그 새와 같이 보였다. 유약한 외형에 방심하게 만들어 놓고 기회가 오면 사정없이 머리를 밟으려 드는 호적수로 보였다. 

 

‘팔을 걸어 상대 주먹의 궤적을 바꾸고 자신의 품 안에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니었나’

 

사실 유진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진은 적어도 아직 성체가 되지 못한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인의 과대평가 유진은 성장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는 충일이 말한 ‘얼르기’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투기장 위에서 어느 때보다 기민해진 그의 감각은 성장을 촉진시켰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생각에 끊임없이 반문하면서 자신도 모르는새 양질의 경험을 얻어가고 있었다.

 

‘내가 준비한 건 카운터용이지 들어가는 기술이 아닌데... 아니지 그것도 내가 혼자 생각한 거잖아. 추측 하지마 선생님이 보여준 것만을 믿어야 해.’

 

그는 상대방의 반응을 보며 조금씩 자신이 배운 기술을 시도해보았다. 이번 무대는 유진에게 있어 검증의 장이었다. 그러다 문득, 유진이 무언가 깨달은 표정을 짓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낌새를 느낀 복서는 도발하던 손을 그의 얼굴 쪽으로 당겨와 가드를 세웠다. 그 순간 정해진 순서처럼 유진이 다가갔다.

 

‘툭- 툭-‘

 

유진이 조지의 가드를 건드렸다. 얕은 주먹이었다. 그러나 조지는 유진의 수를 알지 못하기에 방심하지 않고 가드를 더욱 단단히 했다. 그리고 그거야말로 유진이 노린 것이었다.

 

유진이 조지의 팔 위로 자신의 팔을 걸쳤다. 그리고 배운 대로 그것을 당겨왔다. 주먹을 막고자 밖으로 힘을 주던 조지의 팔은 유진의 팔에 맥없이 끌려갔다.

 

‘퍽-‘

 

힘없이 내려가 버린 가드에 모두가 당황하는 사이 유진이 조지의 얼굴을 가격했다. 유진은 지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퍽- 퍽- 퍽-‘

 

유진은 내려진 조지의 가드를 눌러 놓은 채, 그 위로 산발적으로 주먹을 날렸다. 조지가 팔을 아래로 빼내려고 가드를 얼굴 쪽에서 멀게 할 때마다 주먹을 꽂아 넣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는다고 때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맞서서 버티자니 고착 상태가 계속되었다. 조지가 그 불규칙한 타이밍에 적응하지 못하고 맞고만 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 결정타는 없었고 조지에게는 힘이 남아있었다. 조지는 힘으로 상황을 바꿔보려 했다. 누르고 있는 유진의 팔을 들어보고자 했다.

 

“그렇게 나와야지”

 

힘, 그건 유진이 태호와 연습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태호는 스스로의 장단점을 가감 없이 알려주며 그 상황을 빠져나가는 법도 알려주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의 답은 올리는 힘을 받아주지 않는 것. 여기서 상대의 전완을 흘리는 동시에 상대의 팔오금을 눌러주면 상대의 몸은 균형이 무너져 앞으로 딸려오게 된다. 이때 가장 효과적인 공격은.

 

“버팅”

 

이 광경을 지켜보던 태호가 말했다. 유진이 한 것은 버팅, 박치기였다.

 

‘쩌억-‘

 

또다시 박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조지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 반대편에선 유진의 얼굴도 멀쩡하지는 못했다. 이미 수차례 누적된 충격에 의해 유진의 얼굴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투기장에서 내려온 후 태호는 상대방의 악명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는 불법 파이트클럽에서 푸른 조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인물로, 그와 함께 경기장에 들어간 사람은 얼굴에 시퍼렇게 멍이 든 채로 내려오게 된다는 것이었다.

 

“아닌데, 이번엔 붉게 조졌던데”

 

상기된 태호를 향해 유진이 농담을 던졌다.

 

“야 너는 장난치지 마라 안 어울린다”

 

태호가 정색하고 말했다. 이내 둘 모두 웃음을 터트리며 그들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우스운 소회는 이후 유진에게 악명을 자리하게 만든다. 부랑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소문은 부풀어가고 거기에 스템퍼와 외국인 복서 조지의 감상이 덧붙여지며 공포스러운 형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어느샌가 유진은 '사람을 홀려서는 머리를 깨부수는 괴조'로 불렸다. 한반도에서 나고 자란 부랑자들이 뱀잡이 수리를 본 적이 없는 탓에 조지가 묘사한 서기관조의 심상이 와전되고 와전된 것이다. 삽시간에 번저나간 소문은 유진의 이름을 듣는 사람들에게 아지랑이 같은 두 날개로 활개치며 자비없이 밟아 죽이는 괴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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