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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껏 프레임을 잘못 잡아서 쓸데없는 싸움이 벌어진 건 아닐까?

익명_18633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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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자꾸 들던 생각이라 한 번 올려 봄.

 

저장소 뿐이 아니라 기존 택견계에서 과연 택견이 무술이냐 놀이냐에 대해 논쟁들이 많이 벌어졌지만 아직까지 서로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 외엔 제대로 된 결론들이 없었단 건 다들 알고 있을 거임.

 

그런데 저장소 글들을 읽다 보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음.

 

사실 서로 갈등의 프레임을 잘못 잡은 게 진짜 문제가 아니었을까.

 

그 생각의 근거를 들자면, 수많은 논쟁들이 귀결되는 결론이 바로 이거기 때문임.

 

'택견이 무술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문제인데 그래서 경기에서 손기술을 허용할 거냐 말거냐.'

 

 

 

 

 

즉, 택견의 정체성을 따지는 건 엄밀히 말하면 일종의 명분싸움에 가까우며, 다툼의 진상은 택견의 기술들이 경기에 더 반영이 되는 걸 허용-추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두고 싸웠던 거에 가깝다는 이야기임. (물론 진지하게 택견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던진 경우도 없진 않았지만)

 

실제 택견이 무술이라는 걸 강조하는 쪽에서 택견의 정통성이니 정체성이니 하는 부류의 이야기들을 빼면, 들고 오는 문제 제기 논리의 절대다수가 이런 식임. 원래 택견엔 손기술들이 많은데 지금의 택견 경기 룰은 택견의 손기술들을 아예 배제하다시피 한 반쪽짜리 경기다! 그러니까 택견의 기법들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식으로 룰을 바꾸자!

 

그런데 재미있는 건, 저런 주장에 맞서서 놀이론(스포츠론)을 말하는 쪽은 지금의 택견 룰이 스포츠적으로 더 발달되었다고 주장하거나 신한승 옹의 권위를 빌려 이미 정착된 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면서 지금의 규칙이 더 적절하다고 말한다는 거임.

 

구도가 뭔가 묘하지 않음?

 

전통주의에 가까운 성향이어야 할 무술론자들은 현재의 택견 경기 룰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심지어 안전장구까지 도입해서라도!) 스포츠로서의 발전을 추구해야 하는 놀이론 주장자들은 반대로 현재의 룰이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바뀔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거임.

 

이거야말로 겉으론 택견의 정체성이 놀이냐 무술이냐로 싸워 왔지만 실제로는 기존의 택견 경기의 룰이 만들어내었던 문제점들을 직시하고 그걸 바꾸어내기 위해 노력하느냐, 아니면 그냥 이대로 가느냐의 싸움이었다는 증거임.

 

택견계의 오랜 갈등인 무술론 vs 놀이론이 실상은 개혁파 vs 보수파의 알력다툼에 더 가까웠다는 거임.

 

이게 바로 우리가 생각을 한 번 쯤은 다시 해 보아야 할 지점이고,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정말 많은 부분이 바뀔 수 있음.

 

단적으로 위대태껸 문제만 해도 그러함.

 

현재까지도 기존 택견 협회들과 불편한 동거를 계속해가고 있는 위대태껸이 경원시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정통성 시비 문제도 있지만 등장 당시에 위대 측이 주장한 택견론, 소위 택견 무술론이 당시의 택견계에 있어 너무나 급진적인 사상이었기 때문이었음.

 

그런데 위대태껸이 택견계에 등장한지 10여년이 흐른 지금 보면 결국 위대측의 입장도 결국 위와 대동소이한 게 사실임. 당장 위대측이 가장 알력이 심했던 결련택견 협회의 옛법에 대해 보이는 반응이나 태도만 봐도 분명함.

 

'마음에 들진 않지만 저걸 아예 부정할 수는 없다-' 나 '열심히 노력해 봐라.' 정도가 옛법에 대한 위대측 인물들이 대동소이하게 보이는 반응임.

 

이게 뭘 의미하는 거겠음?

 

택견의 기술을 최대한도로 살릴 수 있는 경기 룰을 추구하는 데 동의한다면, 딱히 무술을 정체성으로 두지 않는다고 해도 그 근본주의로 악명 높은 위대태껸과조차 (일정 부분은 적대적일지언정)공존이 가능해진다 이거임.

 

참고로 굳이 위대태껸과 공존을 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는데 난 '굳이' 해야 한다고 봄.

 

왜냐하면 결국 위대측이 현재의 비밀주의적인 태도나 교류를 하지 않는 폐쇄성을 띄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기존의 택견계가 위대의 '급진적' 사상을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풍조 때문인데 그것 하나만 사라져도 위대 측에서도 굳이 날을 새울 필요가 없어짐. 정통성 시비야 계속 걸어대겠지만 결과적으로 택견계에 송덕기 옹의 기법들이 좀 더 널리 퍼지는 결과가 나올 거고, 그건 기존의 협회들한테도 그리 나쁜 변화가 아닐 거임.

 

그래서 슬슬 결론을 내자면, 

 

늦게나마 갈등의 프레임을 다시 재정비를 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보임.

 

누가 전통이다 아니다의 문제는 어차피 앞으로도 해결이 될 수 없은 종류의 문제겠으나

 

'정말로 현재의 택견 룰이 택견의 기법을 살리는 형태로 잘 이루어졌는가?' 는 협회를 막론하고 굉장히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갈등일 것이며, 그 과정에서 택견판이 보다 더 성숙해질 수 있는 도약의 기회일 것이기 때문임.

 

당연히 지금의 룰이 완전무결하다고 확신하거나 택견의 스포츠화를 위해 변경되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마음에 들어하진 않겠지만, 그 사람들이 싫어하던 말던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니 관심 없음.

 

요점은 택견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진보해야 한다는 거고.

 

적어도 현재의 택견 경기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습은 아니라는 건 분명해 보임.

 

반론은 환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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