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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공개된 구한말 택견 관련 연구자료 확인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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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이상으로 구한말 택견경기가 격하고 난장판이었다던 모양인데?

구한말 신문이나 당시 지식인들, 한국에 방문했던 외국인 관광객들의 저술들을 모아보면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특징이

 

1) 일상에서 벌어지는 싸움과 그게 아닌 싸움이 진짜 확실할 정도로 구분됨. 언성 높아지다 쌈박질까지 가는 싸움일 경우 누구 코피 터지는 순간 주위 사람들이 뜯어말리거나 서로 어물쩡 물러나서 싸움이 거기서 파했다고 함. 옷에 피 묻는 걸 되게 싫어한 모양임.
(내가 서울 토박인데, 어렸을 때 학교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다들 싸움구경 하면서 왁자지껄 하다가 누구 하나 코피 터지는 순간 다같이 뜯어말리는 풍습이 이때도 마찬가지였는듯 ㅋㅋㅋ)

그런데 외국인들이 서술한 돈내기가 걸린 싸움같은 경우엔(여기저기서 존나 열렸다고 하더라) 그 수준이 거의 그 당시 복싱 경기랑 똑같다고 묘사됨. 당시 서양권 복싱경기가 얼마나 개무식(...)했는진 다들 대충 알고 있을거니 굳이 추가적인 언급을 하진 않겠음.

 

2) 위에 언급된 돈내기 싸움이 아닌 지역대 지역으로 붙는 공개적인 택견경기는 생각보다 자주 열리지 않았고(명절마다 열린게 아님) 1년에 한번꼴로 열린 모양임. 그런데 주로 진행양상이 택견 경기 -> 경기 양상이 과열됨 -> 분위기 안좋아지고 택견꾼들이 들고왔던 몽둥이 꺼내듦-> 우랴돌격 후 몽둥이 들고 치는 육박전(석전)이 시작됨.
대충 이런 수순으로 택견 -> 석전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고 구술과 당시 신문 등에 묘사되어있음.
택견꾼들이 벌이는 택견이 본격적인 석전을 시작하기 전에 벌이는 기싸움이자 동시에 당시 참가한 택견꾼들은 석전에서 있었던 육박전을 담당한 돌격대 내지는 용병이었던걸로 보임.
재미있는건 당시 석전에 참가한 인물들의 기법과 특색이 지역별로  다르게 묘사되었다는 점임. 웃대쪽은 힘은 약하지만 재간이 좋고 발을 잘썼다 이런 식으로 ㅇㅇ.


3) 당시 돈내기 등이 걸린 싸움을 묘사한 서술을 보면 (발로) 차고 (주먹으로) 친다고 말함. 그리고 그런 싸움판에 참가한 인원들이 왈자였다고 말하는데 이들이 택견을 향유하였던 계층인걸 보면 상당히 재밌는 결론이 도출됨.


4) 택견은 단순히 한량이나 왈자들만의 향유물이 아니었던 듯함. 
도성의 군졸들이 택견을 하였다는 저술이 있고, 단순한 병사들 뿐만이 아닌 지금으로 치면 전문 군인. 하사관들인 군관급들 또한 택견을 익혔다고 함.
단순히 이 수준을 넘어서 왕의 앞에서 택견 시연과 경기를 벌인 걸로도 보이는데 문서에는 유술이라 서술되어 있으나 이 유술이라는 단어는 한국에 일본무술이 들어오기 이전, 개화기가 시작된 이후부터 널리 쓰이게 된 단어로 당시 문서가 서술된 시점을 고려하면 해당 시연은 택견이었다고 보아야 할 듯.
더욱이 송덕기 옹의 구술에서 본인께서 병사들에게 택견을 가르쳤다는 부분이 있는걸 보면, 이는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라 당대로서는 보편적인 일이었지 않을까 싶음.

 

대략 이러함 ㅇㅇ.
일반적으로 택견계에선 상생공영의 무술. 부상이 없는 부드러운 겨루기 등등의 캐치프레이즈로 택견을 묘사해 왔었지만 근래 하나둘 나오는 연구결과를 보면
구한말 우리 조상님들이 향유했던 택견은 전근대의 야만성을 날것 그대로 간직한 무술이자 문화였다고 봐야 할듯함.

 

확실히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고. 택견하는 사람들이 하는 경기가 그랬으니 이박사님 또한 태권도의 시범을 보고서

 

'그래, 저게 택견이야! 저거 병사들한테 잘 익히게 만들어야 해! 서양 사람들은 발차기를 영 못하는데 우리가 발을 쓰면 핑그르르 주저앉을게 아닌가!' 이런 반응을 보이셨지 않나 싶음.

 

그런 의미에서 너무 룰에 대해 빡빡하게 날세우고 싸우지 않는게 좋을것 같음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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